생각나눔터

믿음에 대하여....

하얀종이Lee 2010. 9. 30. 19:10

 

 

 

‘믿음’이라는 단어는 교회를 다니면서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말이지만,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가르쳐주는 사람을 발견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믿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비단 저 뿐 아니라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갖는 질문이며, 여전히 의문에 싸인 해결되지 않은 질문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참된 믿음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확하고 올바른 개념을 가지지도 못한 체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을 요구받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고, 바로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믿음’이라는 단어는 그리스도인들이나 혹은 종교인들에게만 요구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믿음’을 어떻게 정의하고 생각하든지 상관없이 실상 모든 사람들은 매순간 믿음을 요구받고 있으며, 믿음 없이는 단 한 순간도 살아갈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보고, 듣고, 느끼고, 감각할 수 있는 육적 부분과 동시에 육신의 눈으로는 볼 수도 없고 감각할 수 없으나 분명히 존재하는 영혼의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또한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 역시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있고 감각할 수 있는 물리적인 세상과 동시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세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세상과 보이는 대상을 느끼고 경험하기 위해서는 육신의 감각기관을 사용하면 되지만, 보이지 않으나 분명히 존재하는 세상과 대상을 느끼고 만지고 경험하기 위해서는 육적 감각기관이 아니라 우리는 ‘믿음’을 사용해야만 합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지금 어떤 사람과 마주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의 눈은 그 사람의 겉모습을 보고 있고, 당신의 귀는 그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있고, 당신의 손은 그 사람의 얼굴을 만지고 있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당신은 보여 지는 그 사람의 겉모습에 대해 ‘본다’라고 표현하지 ‘믿는다’고 표현하지 않을 것이고, 목소리를 ‘듣는다’고 표현하지 ‘믿는다’고 표현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보여 지는 부분을 제외하고 그 사람의 보이지 않는 영역인 마음과 성품 그리고 그 사람이 말한 이야기의 진위여부에 대해서 말할 때는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당신은 그 사람의 성품을 ‘본다’ 또는 ‘듣는다’고 표현하기보다 ‘믿는다’고 표현할 것입니다. 왜냐면 그 사람의 보이지 않는 부분은 오직 ‘믿음’으로만 느낄 수 있고, 경험할 수 있으며,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길이는 자로 재고, 무게는 저울로 재듯, 육신의 눈으로 보여 지는 대상은 육신의 감각기관으로 알게 되지만, 보이지 않는 대상에 대해서는 우리의 믿음을 사용함으로 알게 되고 경험하게 됩니다.

 

 

한 치 앞도 모르는 불확실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동시에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보고 느끼고 감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마치 빛이 차단 된 어두운 공간에서 길을 찾는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어두운 공간에 들어가게 되면 사람들은 일단 그 곳에 무엇이 존재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엄청난 불확실함과 마주대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불확실함이 주는 불안과 두려움을 제거하기 위해 자신의 온 몸과 육신의 모든 감각기관을 사용해서 그 공간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으로 수집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육신으로 감각할 수 있는 것을 제외하고 육신의 감각기관이 필요 없는 곳 즉 아무것도 볼 수 없고 들리지 않고 감각할 수 없는 곳에서 길을 찾아야 한다면 그 때 필요한 것은 ‘믿음’을 동반한 결단적 행위입니다. 이처럼 세상에서 살면서 마주하게 되는 수많은 불확실성으로부터 받는 두려움과 근심과 불안이 큰 사람들일수록 그들은 육신의 감각 기관을 더욱 강화하고 그 기능에 의존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듯이 육신의 감각기관을 통해 보고 만지고 들었다고 해도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왜냐면 우리가 감각했던 것이 우리가 감각하지 못했던 세상의 전부를 말해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만 진정한 실체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믿음’이 요구되어집니다. 보이지 않고 감각할 수 없는 대상은 오직 믿음으로만 다가설 수 있고 경험되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불확실함을 마주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나만 안전함을 누리며 살아가게 하는 힘인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믿음은 보이지 않는 불확실성에 자신을 맡기는 것이기에 언제나 전 존재와 생명을 담보로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음의 대상으로 바라본 것이 진정한 궁극적 실재인가 아니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1995년 삼풍백화점이 붕괴되었습니다. 그 때 많은 사람들이 백화점에서 사망했고 부상을 당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백화점의 건물을 보고 만졌습니다. 그것은 육신의 감각으로 알 수 있는 영역이었습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고 몸으로 만져 지는 것이, 보이지 않는 영역 즉 그 건물의 안정성이나 붕괴의 위험을 알려주지는 못했습니다. 왜냐면 보이지 않는 영역을 누리고 경험하기 위해서는 각 사람의 믿음이 필요했고, 그들의 믿음은 그 실재가 진리인지 거짓이었는지에 대한 본질을 그들에게 드러내고 확인시켜 주는 통로였습니다. 물론 사람들 중에는 ‘삼풍백화점이 붕괴될 정도로 위험하다.’는 소문을 들은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소문을 들었든 그렇지 않든지 그들은 각 자의 믿음에 따라 그 건물을 들어갔고 또는 들어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물론 그 건물에 들어간 사람이라면 그들이 믿은 것은 ‘그 건물은 안전하다.’는 자기 나름대로의 확신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바람이나 기대 혹은 생각과 달리 건물은 붕괴되었습니다. 결국 건물의 붕괴는 그들의 믿음이 잘못된 거짓위에 기초하고 있었던 것을 확인시켜 준 것입니다. 그들은 건물이 붕괴되는 것을 보면서 자신들이 믿었던 믿음의 대상은 여지없이 실재가 아니고 허상이었음을 알게 되고 경험해야 했습니다. 결국 진정한 실재가 아닌 헛된 거짓을 붙잡았던 그들의 잘못된 믿음이 그들로 하여금 죽음을 경험하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궁극적인 실재를 믿음의 대상으로 붙잡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가 믿었는가? 믿지 않았는가? 보다 어쩌면 우리의 믿음이 진정한 실재인 진리에 근거했는가? 그렇지 않은가?가 더 중요한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으로 붙잡아야 할 실체 즉 보이지 않으나 변함없이 존재하는 진정한 궁극적 실체는 무엇일까요? 성경은 이에 대해 영원히 살아계신 하나님과 일점 일획도 변함없이 신실하게 성취되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바라보고 붙잡아야 할 믿음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과 그 분의 말씀입니다.

 

 

다만 우리가 믿음에 대해 생각할 때 믿음을 소유해야 하는 우리의 입장에서 고려해야 하는 것은 ‘믿음은 어떻게 자라고 성장하는가?’에 대한 문제입니다. 성경에서는 우리의 믿음이 ‘들음’에서 나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믿음의 존재이지만,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진정한 믿음은 저절로 생겨지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믿음이 세워지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행해져야 하는 과정이 있습니다. 그것은 로마서 10장 17절에 기록되었듯이 믿음은 (육신의 눈으로 보지 못하고 감각할 수 없지만 진정한 실재가 되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과정을 통해 성장하게 됩니다. 디엘 무디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믿음을 간구하면서 언젠가는 믿음이 내려와서 나를 번개처럼 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믿음은 오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오늘 나는 로마서 10장 17절을 읽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나는 성경을 덮고 믿음을 간구했습니다. 그리고 또 성경을 폈습니다. 그렇게 성경을 읽으면서 그 후 나의 믿음은 점점 자라났습니다."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진정한 실재가 되는 ‘그리스도의 말씀’인 진리를 듣고 보고 읽는 과정을 통해 우리 안에서 싹을 틔우고 성장하며 열매로 맺어가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하시는 참된 ‘믿음’이란 자신의 생각이나 기대에 좌우되는 주관적인 실체가 아니라 생명을 전제로 하여 영원히 살아계신 하나님과 일점일획도 변하지 않고 이미 성취되었고 지금도 성취되고 있으며 또한 앞으로도 성취될 하나님의 말씀을 궁극적 실재로 바라보고 그것을 경험하고 누리게 하는 힘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믿음은 저절로 자라고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듣는 과정을 통해 자라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속적으로 듣고 배우는 과정을 통해 더욱 견고한 믿음의 뿌리가 우리의 삶을 안전하게 지탱해 나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