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 간절한 기다림으로(시편 130편)
시편 130편은 전체가 8절로 구성된 짧은 시편이지만 이 안에 ‘기다림’이라는 단어가 4회나 반복됩니다. 시인은 자신의 영혼이 밤새도록 파수를 보면서 지쳐 아침을 기다리는 파수꾼보다 더 간절히 여호와를 기다린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시편을 묵상하면서 ‘기다림’이란 단어가 유독 되풀이되어 강조되고 있음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사실 ‘기다림’은 그 대상을 신뢰할 때만 자신의 시간을 걸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을 수 없고 신뢰할 수 없다면 우리는 그가 누구이고 무엇이라고 해도 기다림에 자신의 시간을 결코 투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기다림’이라는 단어에는 어쩌면 신뢰가 함께 어우러져 있다 하겠습니다. 기다림의 대상이 반드시 올 것을 믿기에, 약속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믿기에, 눈에 보이는 상황이 아무리 암울해 보인다 할지라도 믿음과 신뢰는 기다림이라는 터널을 지나 절망을 소망에 다다르게 합니다.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릴 수 있는 것은 밤이 지나면 반드시 아침이 오리라는 것을 믿는 절대적인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하기에 그는 간절히 어두운 밤을 견디며 아침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시인은 깊은 고난의 상황에서 주께 부르짖고 있습니다. 자신의 부르짖는 소리에 귀 기울이시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가 이렇게 부르짖고 간구하는 이유 역시 주님께서 자신의 간구를 들어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가 여호와를 기다리며 주의 말씀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사실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신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기도하는가? 생각해보니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간구에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실 하나님을 기다리며 기도하는가? 생각해보니 하나님의 약속하심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믿는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과 신뢰가 기다림의 행동을 가져옵니다. 시인의 기다림은 하나님을 향한 절대 믿음과 신뢰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리고 7절에서 이스라엘을 외칩니다.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라고, 그의 믿음은 주의 말씀과 주님을 기다림으로, 그리고 그러한 기다림은 이스라엘을 향한 권면과 도전으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그 기다림 안에는 어떤 믿음과 신뢰가 있습니까? 130편의 시인처럼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리는 간절함보다 더 간절히 하나님을 기다리고 바라보는 진정한 믿음과 신뢰가 우리 모두에게 부어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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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1)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여호와여 내가 깊은 곳에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
(130:2) 주여 내 소리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130:3)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지켜보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
(130:4)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하게 하심이니이다
(130:5) 나 곧 내 영혼은 여호와를 기다리며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는도다
(130:6)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
(130:7)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여호와께서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속량이 있음이라
(130:8) 그가 이스라엘을 그의 모든 죄악에서 속량하시리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