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문

야곱의 유언, 죽음과 장례(창 49:28-50:14)

하얀종이Lee 2022. 7. 21. 16:24

 

https://youtu.be/4YtimfVCRiM

 

 

제목 : 야곱의 유언, 죽음과 장례

본문 : 창세기 49:28~50:14

 

그 청년 바보 의사라고 알려진 안수현씨를 아십니까? 그는 1991년 고려대 의대에 입학하고, 후에 내과 전문의로 일하다가 갑자기 20061, 그의 나이 33세 때 유행성출혈열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33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생에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는데 이는 그의 삶에 대해 기록한 [그 청년 바보 의사]라는 책을 통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의 흔적이 되고자 스스로를 스티그마’(stigma·흔적)라고 불렀던 한 신실한 젊은 의사,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환자를 자신의 생명같이 여기며 환자의 몸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치료해주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심지어 바보같이 보이는 청년 의사 안수현씨의 죽음 이후 그의 장례는 그가 다녔던 영락교회에서 교회장으로 치러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영정사진이 걸리기 전부터 수많은 조문객이 찾아오면서 4천여 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몰려오게 됩니다. 이렇게 많은 조문객이 모인 것은 유명하고 존경받던 한경직 목사님의 장례식 이후에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젊은 의사가 죽었는데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조문을 온 것일까?" 대부분의 조문객 간에도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 중에 할아버지 한 분이 청년의사의 영정사진 앞에서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나는 이 청년의사가 근무하던 병원 앞에서 구두를 닦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청년은 구두를 닦을 일이 없으면서도 괜히 구두를 닦고 돈을 더 많이 주고 내 손을 잡으며, '할아버지, 춥지 않으세요? 식사는 하셨어요?' '할아버지! 외로우시면 하나님을 믿으세요. 하나님은 할아버지를 사랑하시거든요.' 그러면서 예수님을 소개해 주고, 나를 붙들고 기도해 주었습니다."

 

, 영정사진 앞에서 오열하던 한 아주머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이 의사가 근무하던 병원의 세탁부에서 일합니다. 내가 세탁 카트를 끌고 갈 때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가진 사람이 없었지만, 이 청년의사는 나를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습니다. '얼굴이 안 좋으시네요. 어디 아프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약도 갖다 주시고,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 주셨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그의 일화 중에, 한 어린 환자가 입원했는데 그 환자에게 퇴원할 때 선물을 주겠노라고 약속했는데, 그 환자는 집안 사정 때문에 안수현씨에게 말도 못하고 그냥 퇴원해버리게 됩니다. 그러자 그는 차트를 찾아서 그 어린 환자가 살고 있는 집을 확인한 다음,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선물 꾸러미를 사들고 부산까지 갔다 오던 바보 같은 의사였습니다.

 

병동 의사들과 간호원들의 생일이나 그들에게 축하할 일이 생기면 그들에게 케이크를 들고 찾아갔던 청년 의사, 밤새 환자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구두 닦을 일이 없으면서도 구두 닦는 할아버지 가게에 와서 구두를 닦고 복음을 전하던 청년 의사,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세탁부 아주머니에게 인사하고 안부를 물어주던 청년, 약도 갖다 주고, 기도해 주던 하나님의 사람, 매일 아침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 청년 의사, 구정 연휴 기간에 혼자 시간을 보내는 사람에게 찾아가 함께 시간을 보내던 청년 의사, 의대에 들어가 공부가 밀리고, 시험이 닥치고, 유급을 당해도, 예배에 최우선을 두고 살아갔던 청년 의사. 바쁜 인턴 기간에도 52주 가운데 51주 예배를 드리기 위해 치열하게 예배의 자리를 지켜내던 청년 의사, 그는 자신의 이메일의 마지막에 항상 예수의 스티그마(흔적)”이라고 썼던 것처럼, 자신의 삶을 그렇게 살다가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흔적을 갖고 살기 원했던 그 청년 바보 의사는 예수님처럼 33살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를 만났던 사람들은 한 결 같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젊은 의사가 믿는 예수라면 나도 믿겠소.”라고 말입니다.

 

인생은 사는 동안에도, 그가 살아왔던 삶의 무게와 영향력을 알 수 있지만, 이처럼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그가 살아왔던 삶의 무게와 영향력은 더 잘 알아볼 수 있게 됩니다. 때로 우리의 삶은 죽음을 통해 드러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죽음을 통해 그의 삶을 더욱 빛나게 하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나타난 야곱의 죽음과 그의 장례식에 대한 말씀을 읽으면서 저는 불현 듯 이전에 읽었던 책 [그 청년 바보 의사]에서 그려진 안수현씨의 죽음과 그의 장례식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진정 믿음의 사람들의 죽음은 어떠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말씀에 나타난 야곱의 유언과 죽음과 장례의 모습을 통해 그 해답을 함께 찾아보고자 합니다.

 

야곱은 어떤 사람입니까? 그는 태어날 때부터 참으로 경쟁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을 누구보다도 간절히 원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태어날 때 쌍둥이 형 에서의 발꿈치를 잡고 세상에 나온 것도 바로 장자에게 주어지는 장자권의 축복을 받고자 하는 마음이 강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장자가 누리게 되는 권리와 축복을 얻기 위해 늘 시시탐탐 기회를 노렸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사냥하고 돌아와 배고파 죽을 지경에 놓인 에서에게 팥죽 한 그릇을 넘겨줌으로써 마침내 그렇게도 원했던 장자권을 손에 넣게 됩니다. 그러나 거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눈이 어두워진 아버지를 속여 장자 에서가 받을 축복까지 가로챘습니다. 물론 이 일은 결국, 에서의 분노를 사게 되고 야곱을 향한 에서의 미움은 그를 죽이려는 마음까지 품게 합니다. 결국 야곱은 고향을 떠나 외삼촌 라반이 있는 하란으로 떠나는 신세가 됩니다. 그 곳 에 거하면서 야곱은 자신을 속여 품삯을 열 번이나 변경하는 라반을 섬겼고 억울하고 속상하지만 그를 부요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야곱은 그곳에서 4명의 아내와 12명의 아들과 1명의 딸을 얻었고, 소유도 늘고, 가축도 불리고 성공한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다시 시기와 질투에 사로잡힌 라반을 피해 하란을 떠나게 됩니다. 야곱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형 에서가 자신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강력한 죽음의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그 사건을 통해 그는 하나님과 절박한 씨름을 하게 되고 비로소 하나님 없이는 자신은 한 걸음도 내딛을 수 없는 무력한 존재임을 깨닫게 되면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의 삶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게 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고 해서 야곱의 삶에 고난과 어려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 이후에도 야곱은 사랑하는 딸 디나가 세겜에게 강간을 당하는 일로 마음이 무너졌고, 그 일로 인해 그의 아들 레위와 시므온이 세겜을 급습해서 세겜의 모든 남자를 칼로 죽이는 사건을 경험하며 두려움과 낙심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사랑하는 라헬을 먼저 보내야 했고, 아버지 이삭을 하나님의 품으로 보내는 이별의 아픔을 겪었습니다. 또한 사랑하는 아내 라헬에게 얻어 가장 사랑했던 아들 요셉이 형들의 시기와 미움으로 팔려간 사실도 모르고 맹수에게 잡혀 죽은 줄 알고, 요셉을 다시 만나기까지 일평생 그리움에 묻혀 살아야 하기도 했습니다. 창세기 479절 말씀을 보면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실제로 야곱은 험악한 인생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나이가 들면 들수록 야곱의 삶은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삶이 되었고, 육신의 눈이 아닌 영의 눈으로 모든 상황을 바라보는 믿음의 눈을 갖게 되었고, 하나님의 은혜에 점점 더 의지하고 의존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갔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런 야곱의 죽음을 그리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삶의 고난 속에서 믿음의 성장과 성숙을 이루며 살아왔던 야곱이 과연 죽음 앞에서 어떤 말을 자손들에게 들려주고 있으며, 어떤 모습으로 죽음으로 맞이하고 있고, 또 그의 죽음과 장례식은 그의 자손들과 남겨진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력을 주고 있을까요? 믿음의 사람들은 삶과 죽음을 통해 과연 무엇을 남겨주고 전해줄까요?

 

1) 믿음의 사람은 남겨진 사람들의 마음에 믿음의 유산을 남깁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앞 문단을 보면 야곱이 그의 12아들을 모두 불러 모으고 각각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반드시 이루어질 하나님의 계획을 축복하며 선포합니다. 야곱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각 아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하심을 아는 영적인 눈이 열렸기 때문이고, 그것을 선포하는 담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것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이 없이는 어떠한 선포도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야곱은 아들들을 향한 모든 축복을 마치고, 자신의 죽음을 예기하면서 유언을 남기게 됩니다. 창세기 49:29절입니다. “그가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되 내가 내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리니 나를 헷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에 우리 선조와 함께 장사하라.”

 

사실 유언은 죽기 전에 남기는 마지막 말이기에 다른 어떤 것보다 강력하고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유언은 사람이 일평생 가장 가치 있고 소중하게 여긴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하는 중요한 단서가 되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가장 소중한 가치를 유언에 담기 때문입니다. 여기 계신 성도님들이 만약 죽음 앞에 선다면 무슨 말을 유언으로 남기시겠습니까? “나를 어디에 묻어라.”고 남기시겠습니까? 아니면 예수님 믿고 서로 사랑하고 행복하게 살아라.”고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내 원수를 갚아달라고 하시겠습니까?” 여기에 계신 분들은 각자 나름대로 유언으로 남기고 싶은 말들을 마음에 하나씩은 가지고 계실 것입니다. 또한 그 유언에 자신이 일평생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왔던 가치를 담을 것입니다. 남겨진 사람들은 다른 말은 지키지 않다가도 유언만큼은 순종하고 지키려고 할 때가 많습니다. 청개구리도 일평생 엄마의 말과 반대로 살다가 자신이 죽으면 강가에 묻어 달라.”는 엄마 개구리의 마지막 유언을 듣고 순종하지 않았습니까?

 

어쨌든 야곱은 자신의 시체를 묻어야 할 곳이 어디여야 하는지, 그리고 반드시 그곳에서 자신을 장사하라고 유언을 남기며 죽습니다. 그렇다면 야곱에게 그 장소는 왜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요? 사실 야곱이 유언에서 가리켰던 그의 매장지는 그의 할아버지였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헷사람 에브론에게 밭과 함께 사서 매장지로 삼은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왜 야곱은 당시 가장 화려하고 강대했던 애굽에 살면서 그 땅에 묻히기를 거부하고 굳이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에 있는 굴에 자신의 시신을 묻을 것을 아들들에게 요구했던 것일까요? 막벨라 굴은 창세기 23장에서 보면, 사라가 127세에 헤브론에서 죽을 때, 아브라함이 사랑하는 아내를 매장할 곳으로 산 매장지입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은 그의 매장지로 그 굴을 산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내가 이 가나안 땅을 네게 약속의 땅으로 줄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창세기 15장을 보면 네 자손이 이방의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길 것이고 그리고 4대만에 내가 그들을 이 땅으로 데려올 것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듣고 그것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믿었던 아브라함은 그의 자손들이 가나안 땅으로 돌아올 것임을 확신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그 믿음의 고백으로 당시 엄청난 돈을 기꺼이 헷사람 에브론에게 지불하고 그 땅을 산 것입니다. 사실 에브론은 그 땅을 그냥 아브라함에게 주려고 했지만, 아브라함은 대가 지불 없이 그 땅을 소유하는 것을 거절하고 분명한 대가를 지불하고 그 땅을 소유함으로써 가나안 땅이 하나님이 주신 땅임을 미리 선포하는 믿음의 깃발을 꽂은 것입니다. 땅을 산 것은 오늘날 우리가 하는 것처럼 부동산 투자를 통해 돈을 벌고자 함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어쩌면 당시에 미련하고 어리석어 보이는 짓이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이 그렇게 한 것은 바로 이 땅은 자신의 언약을 신실히 이루시는 하나님이 분명히 그 분의 말씀처럼 우리 자손들에게 주실 땅이기에 내가 믿음으로 이 땅을 사서 자손에게 믿음의 증거를 남겨주겠다.’는 믿음의 고백이었던 것입니다. 그 땅을 산 것은 바로 이 땅이 하나님이 약속한 우리에게 주신 땅이라는 아브라함의 믿음의 흔적인 것입니다. 막벨라 굴을 산 것은 이처럼 하나님이 가나안 땅을 우리에게 주신다는 아브라함의 믿음의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그곳에는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 그리고 아삭과 그의 아내 리브가, 그리고 야곱의 아내 레아가 묻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야곱은 어디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있습니까?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야곱은 당시 가장 찬란한 문명을 가지고 있고 가장 강대국이었던 애굽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화려한 곳에 묻히기를 거부하고 선조들이 묻힌 막벨라 굴에 묻어 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야곱의 이러한 고백은 단지 그의 조상들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닙니다. 야곱 역시 그의 할아버지였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에 그러한 유언을 남긴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반드시 자신의 할아버지인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다. 그 땅을 반드시 우리에게 줄 것이고 우리가 바라봐야 할 본향은 바로 거기다.”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하나님과 그 분의 약속이 신실히 이루어질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 그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약속을 다시금 새겨주는 믿음의 유언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야곱과 같은 믿음의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심지어 죽음의 앞에서도 사람들의 마음에 그들이 믿어야 할 하나님, 그리고 자신의 언약을 신실히, 반드시 이루시고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게 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믿음의 흔적을 새겨 놓습니다. 우리 역시 야곱과 같이 믿음의 사람들이 보여준 것처럼 사람들의 마음에 믿음을 새기고 믿음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믿음의 사람은 많은 사람을 믿음의 길에 함께 서게 하고 걷게 합니다.

야곱은 아들들에게 명하기를 마치고, 유언을 한 후 숨을 거두게 됩니다. 참으로 복된 죽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자 요셉은 울며 그를 수종 드는 의원들에게 그의 몸을 향으로 처리하게 합니다. 40일 동안 야곱의 시신은 향으로 처리되었고, 사람들은 그의 죽음으로 인해 70일간 곡하였다고 말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야곱의 죽음에 애굽 사람들도 하나가 되어 함께 애도하고 슬퍼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요셉은 애굽의 바로 왕에게 나아가 가나안 땅 아버지가 파 놓은 묘실에 그를 장사하고 난후 다시 돌아오겠다고 말하면서 바로의 허락을 받게 됩니다. 창세기 505~6우리 아버지가 나로 맹세하게 하여 이르되 내가 죽거든 가나안 땅에 내가 파 놓은 묘실에 나를 장사하라 하였나니 나로 올라가서 아버지를 장사하게 하소서 내가 다시 오리이다 하라 하였더니 바로가 이르되 그가 네게 시킨 맹세대로 올라가서 네 아버지를 장사하라.”

바로 왕의 허락은 받은 요셉은 아버지 야곱을 장사하기 위해 가나안 땅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 장례의 행렬에는 바로의 모든 신하와 바로 궁의 원로들과 애굽 땅의 모든 원로와 요셉의 온 집과 그의 형제들과 그의 아버지의 집이 함께 했습니다. 그들의 어린 아이들과 양 떼와 소 떼만 고센 땅에 남겨졌고, 병거와 기병이 요셉을 따라 올라갔기 때문에 그 떼가 심히 컸습니다. 그들은 모두 가나안 땅 막벨라 굴을 향해 나아갔던 것입니다. 그들이 바라봐야 할 본향, 하나님이 약속한 곳, 그리고 반드시 성취하시고 이루실 그 땅을 행해 그 거대한 행렬이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야곱을 장사하기 위해 그의 시체를 매고 말입니다. 지금 비록 야곱은 죽었지만 그의 죽음이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바라보게 하고 그 곳으로 믿음의 발걸음을 내 딛게 하고 있습니다. 그 행렬에는 야곱의 아들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론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행렬에는 심지어 바로의 신하들과 바로 궁과 애굽 땅의 모든 원로들처럼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도 함께 했고, 하나님의 약속을 들어본 적도 없고, 심지어 그 곳을 왜 가야만 하는지도 그 이유도 모른 체 그 행렬을 따르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믿음의 사람들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던 그 행렬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은 야곱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모두 하나님이 약속하셨던 그 땅을 향해 함께 걸음을 내딛었고, 야곱의 장례를 위한 거대한 행렬은 믿음의 길을 쫓는 사람들의 무리가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야곱의 죽음은 그의 자손들이 바라보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하나님의 약속을 다시 그들의 심령에 새기게 함으로써 어마어마한 많은 사람들을 믿음의 행렬에 동참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믿음의 한 사람의 죽음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 믿음의 행렬 가운데, 또한 우리 모두가 믿음으로 바라봐야 할 약속의 땅을 향해 나아가는 그 믿음의 길 가운데 함께 하도록 도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떼가 심히 컸습니다. 야곱을 장사하기 위해 가는 그 길은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삶과 죽음이 야곱의 장례를 위해 가나안 땅을 향해 가고 있는 거대한 행렬과 같이 많은 사람들을 믿음의 길로 초대하고 함께 걷게 하는 도전이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우리의 믿음의 삶과 죽음이 많은 사람들을 믿음의 행렬에 동참하게 하는 도전이 되어 그 행렬이 거대한 무리들의 움직임으로 확산되길 기도합니다.

 

3) 믿음의 사람은 다음 세대의 믿음을 세워주는 통로가 됩니다.

창세기 5011절을 보면 그 땅 거민 가나안 백성들이 아닷 마당의 애통을 보고 이르되 이는 애굽 사람의 큰 애통이라 하였으므로 그 땅 이름을 아벨미스라임이라 하였으니 곧 요단 강 건너편이더라.”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그 거대한 믿음의 행렬로 인해 가나안 백성들까지 야곱의 죽음이 엄청난 애통의 사건임을 알게 됩니다. 야곱의 죽음은 이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슬픔과 애통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한 번 야곱의 인생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젊었을 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자신의 지혜와 노력과 수고와 애씀과 고난으로 험악한 삶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가 바로를 축복할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130년을 살아왔는데 내 인생은 험악했습니다.”라고.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삶, 자기 힘으로 자기 뜻대로 살아가려는 삶, 하나님이 없는 삶은 진실로 험악하고 힘겨운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 속에서 나타난 야곱의 마지막의 모습은 너무 아름다운 모습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야곱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영적인 믿음의 눈이 열려졌고, 그의 자녀들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축복하는 성숙한 믿음의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히브리서 1121절에서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라고 말씀함으로써 야곱이 믿음 안에서 죽음을 맞이했음을 이야기 해줍니다. 그는 죽는 순간 그의 아들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본향을 믿음으로 바라보게 했고 그 믿음의 길로 향하는 문을 열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죽음은 애굽 사람들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슬픔과 애통함이 되었습니다. 그의 죽음을 기뻐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그의 죽음은 마치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것처럼 큰 아픔과 상실감을 주었습니다. 그만큼 야곱은 살아있는 동안 선하고 긍정적인 영향력을 그가 머문 곳에 흘려보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아버지의 유언대로 행했고 그의 시신은 막벨라 굴에 장사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던 아브라함의 믿음의 고백이자 흔적이었던 장소였던 그 곳이 이제는 야곱이 그의 자손들에게 바로 이 곳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곳이고 너희들이 바라봐야 할 믿음의 본향이야.”라고 말하고 그곳에 묻히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야곱의 믿음은 그의 사랑하는 요셉에게 그대로 흘러가게 됩니다. 창세기 5024-25절을 보면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이르되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죽음을 앞에 둔 요셉의 유언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요셉은 죽음 앞에서 그의 아버지 야곱이 했던 유언을 동일하게 반복하고 있습니다. 야곱의 믿음을 그대로 이어받은 요셉은 야곱이 했던 그 믿음의 유언을 그대로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마치 안수현씨의 죽음을 보고 예수님을 모르던 많은 사람들이 했던 그 청년 의사가 믿는 예수라면 나도 믿겠소.”라는 고백과 동일한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삶과 죽음이 이렇게 믿음의 다음 세대를 세우는 귀한 통로로 사용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의 삶을 마치는 죽음의 순간까지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그리고 그 분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그 믿음으로, 우리가 바라봐야 할 그 본향을 우리 뿐 아니라 그 믿음의 고백으로 다음 세대까지 그 믿음의 본향을 보여주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발자국을 통해 우리의 다음세대들이 이 믿음의 길에 동참하도록 믿음의 대를 이어주는 그런 축복의 통로로 우리가 세워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말씀을 시작할 때 이야기 했던 그 청년 바보 의사, 안수현씨나, 성경에 기록된 믿음의 선조였던 야곱의 죽음과 장례의 모습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떠올리게 합니다. 우리의 삶과 죽음이 예수님의 흔적이 되어 이 땅에 남겨진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믿음의 불꽃을 피우게 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새기게 하며, 그들로 하여금 믿음의 행렬에 동참하여 함께 이 믿음의 길을 걸어가도록 도전하는 통로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의 삶이 많은 것을 이야기 하듯, 우리의 죽음 역시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죽음이 후에 어떤 이야기가 들려지고 펼쳐질까요? 죽음 이후의 이야기는 바로 오늘 믿음으로 살아내는 우리의 삶의 순간을 통해 적혀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오늘을 믿음으로 살아냄으로 죽음이 후에도 믿음의 향기를 뿜어내는 우리가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창세기 49:28~50:14]

(49:28) 이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라 이와 같이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니 곧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49:29) 그가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되 내가 내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리니 나를 헷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에 우리 선조와 함께 장사하라 (49:30) 이 굴은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에 있는 것이라 아브라함이 헷 사람 에브론에게서 밭과 함께 사서 그의 매장지를 삼았으므로 (49:31)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었고 이삭과 그의 아내 리브가도 거기 장사되었으며 나도 레아를 그 곳에 장사하였노라 (49:32) 이 밭과 거기 있는 굴은 헷 사람에게서 산 것이니라 (49:33) 야곱이 아들에게 명하기를 마치고 그 발을 침상에 모으고 숨을 거두니 그의 백성에게로 돌아갔더라 (50:1) 요셉이 그의 아버지 얼굴에 구푸려 울며 입맞추고 (50:2) 그 수종 드는 의원에게 명하여 아버지의 몸을 향으로 처리하게 하매 의원이 이스라엘에게 그대로 하되 (50:3) 사십 일이 걸렸으니 향으로 처리하는 데는 이 날수가 걸림이며 애굽 사람들은 칠십 일 동안 그를 위하여 곡하였더라 (50:4) 곡하는 기한이 지나매 요셉이 바로의 궁에 말하여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은혜를 입었으면 원하건대 바로의 귀에 아뢰기를 (50:5) 우리 아버지가 나로 맹세하게 하여 이르되 내가 죽거든 가나안 땅에 내가 파 놓은 묘실에 나를 장사하라 하였나니 나로 올라가서 아버지를 장사하게 하소서 내가 다시 오리이다 하라 하였더니 (50:6) 바로가 이르되 그가 네게 시킨 맹세대로 올라가서 네 아버지를 장사하라 (50:7) 요셉이 자기 아버지를 장사하러 올라가니 바로의 모든 신하와 바로 궁의 원로들과 애굽 땅의 모든 원로와 (50:8) 요셉의 온 집과 그의 형제들과 그의 아버지의 집이 그와 함께 올라가고 그들의 어린 아이들과 양 떼와 소 떼만 고센 땅에 남겼으며 (50:9) 병거와 기병이 요셉을 따라 올라가니 그 떼가 심히 컸더라 (50:10) 그들이 요단 강 건너편 아닷 타작 마당에 이르러 거기서 크게 울고 애통하며 요셉이 아버지를 위하여 칠 일 동안 애곡하였더니 (50:11) 그 땅 거민 가나안 백성들이 아닷 마당의 애통을 보고 이르되 이는 애굽 사람의 큰 애통이라 하였으므로 그 땅 이름을 아벨미스라임이라 하였으니 곧 요단 강 건너편이더라 (50:12) 야곱의 아들들이 아버지가 그들에게 명령한 대로 그를 위해 따라 행하여(50:13) 그를 가나안 땅으로 메어다가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헷 족속 에브론에게 밭과 함께 사서 매장지를 삼은 곳이더라 (50:14) 요셉이 아버지를 장사한 후에 자기 형제와 호상꾼과 함께 애굽으로 돌아왔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