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중 속에서 빛난 한 여인의 믿음(마가복음 5:21-34)
https://youtu.be/3BAVuGXLKTw?si=5tlA3kBZPY6WGYX1
제목 : 군중 속에서 빛난 한 여인의 믿음
본문 : 마가복음 5:21-34
“홍일점”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는 여럿 속에서 특별히 눈에 띄게 두드러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거의 모든 구성원들이 남성인 집단에 딱 한 명 있는 여성을 빗대어 말하는 단어이기도 하지요. 반대로 다수의 여성 중 남성이 한 명 있는 경우는 그 남성을 청일점이라고 부른다.
“홍일점”은 애초에 ‘붉은 꽃 한 송이’라는 뜻으로 쓰였습니다. 이 말은 중국 남송 시대의 정치인 왕안석이 ‘석류“라는 시에서 읊은 "만록총중홍일점(萬綠叢中紅一點): 수많은 푸른 풀 속에 붉은 꽃 한 송이" 즉, 언저리가 온통 초록인 가운데 단 한 송이의 석류꽃이야말로 선연한 봄의 빛깔이 아닌가!”하고 경탄한 것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군(무리군)계(닭계)일(한일)학(학학)”이라는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이는 “닭의 무리에 있는 한 마리 학. 변변치 못한 여러 사람 가운데 홀로 뛰어난 사람. 평범한 사람들 중에 유난히 돋보이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군계일학은 중국 진나라 역사 기록을 담은 역사서 《진서(晋書)》에 나오는 얘기에서 유래되었다. 역사적으로 시대가 혼란스러우면 속세를 떠나 산으로 숨는 선비가 많았다. 중국 위진(魏晉)시대에도 그런 선비들이 있었는데 죽림칠현(竹林七賢)이 대표적이다. 죽림칠현은 위진의 정권교체기에 부패한 권력에 등을 돌리고 죽림에 모였던 일곱 명의 지식인을 일컫는다. 그중 혜강은 특히 문학 재능이 뛰어났다. 그는 끝까지 세상에 나오기를 거부하다가 왕의 미움을 사 죽임을 당했는데, 당시 그에게는 열 살배기 아들 혜소가 있었다. 혜소는 자라면서 아버지를 닮아 갔다. 세상으로 나와 벼슬살이를 하던 산도가 진나라 무제 사마염에게 혜소를 추천했다. “《서경》에 이르기를 ‘아버지의 죄는 아들에게 묻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아비 혜강이 처형당했지만 그 일은 아들 혜소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혜소의 재능이 뛰어나니 그를 비서랑에 임명하십시오.” 무제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대가 말하는 사람이라면 비서랑으로 되겠소? 더 높은 벼슬에 앉혀야겠소.” 혜소가 무제에게 부름을 받아 가던 날, 그를 지켜보던 어떤 사람이 왕융에게 말했다. “어제, 구름처럼 많은 사람 틈에서 혜소를 처음 보았습니다. 의젓하고 늠름한 모습은 마치 학이 닭 무리에 있는 듯했습니다.” 그러자 그의 아버지 혜강을 잘 알던 왕융이 말했다. “자네는 혜소의 아버지 혜강을 본 적 없겠지? 그는 혜소보다 훨씬 뛰어났네.” 《삼국지》에서 유래한 백미(白眉)도 여럿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을 가리킨다.
------------------------------------------------------------------------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 주변에 모여든 많은 무리들, 수많은 군중들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큰 무리와 군중들에 의해 둘러싸여 계셨습니다. 그 분이 가시는 곳마다 수많은 사람들은 소문을 듣고 몰려 왔으며, 그 분이 머무시는 곳마다 큰 무리가 따르며 그 분을 에워쌌고, 그 무리들은 예수님을 조금 더 가까이 보고자 서로를 밀고 당기며, 그 분의 뒤를 쫓았습니다. 그러나 제아무리 예수님과 가까이 있고, 예수님을 만지려고 자기들끼리, 서로 밀고 당기는 중에 예수님의 옷깃을 스치고, 예수님의 몸에 손을 대는 사람이 있었다 해도 그렇다고 그들 모두가 예수님의 능력을 경험하고, 그 분의 은혜를 입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 군중 속에서 단 한 명, 예수님께 살며시 다가와 조용히 그 분의 옷깃을 만졌던 여인, 열 두해를 혈루증에 시달리며 병의 나음을 위해 자신의 모든 소유를 허비했지만, 결국 병이 더 악화되는 것에 절망해야 했던 그 여인은 예수님을 에워싸고, 예수님을 따르고 쫓았던 수많은 군중의 무리와는 달리 유일하게, 예수님의 능력을 경험하고, 자신의 병에서 즉각적이고 온전한 치유와 회복을 경험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예수님 곁에 가까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몸에 손을 대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능력과 은혜를 경험하지 못했던 그 수많은 군중의 사람들과 무리들과 다르게 예수님의 옷깃만 스쳤음에도 불구하고 치유와 구원을 얻은 이 여인을 구별하게 하는 것일까요? 예수님을 따르는 군중들 속에, 그들과 함께 있었지만, 이 여인의 모습은 무리들 속에서도 예수님의 눈에 뛴 그야말로 홍일점과 같은 또는 청일점과 같았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여인은 예수님의 눈에 띄게 되었을까요? 또한 이 여인의 어떤 모습이 예수님의 주목을 받게 하였던 것일까요? 오늘 본문 말씀을 함께 살펴보면서 은혜를 받기 원합니다.
-----------------------------------------------------------------------------------------------------------------------------------------------------------------
1) 절망의 끝에서 소망의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이 무리들, 이 군중들 속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나름대로 각 자의 거칠고 고단한 인생의 이야기와 사연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그 분을 쫓는 이유도 다양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녀나 배우자, 가족의 문제로 예수님께 나아가 해결함을 받으려했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경제적인 어려움을 해결 받고자, 먹을 것이 없어 고픈 배를 채우기 위해 예수님을 만나러 나아갔을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의 질병을 고침 받으려고 나온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문제 해결이 아닌 단지 호기심으로 예수님을 보러 온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같이 오늘 본문에 나온 이 여인도 예수님께 나온 이유가 분명히 있었습니다. 이 여인은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왔습니다. 이 여인이 앓고 있던 혈루증은 불규칙적으로 피를 흘리는 출혈병을 의미하는데, 이런 불규칙적인 출혈이 6개월, 1년도 아닌 12년간 지속되었던 것입니다. 육체적으로는 말할 것도 없이 너무나 지치고 힘든 상태였을 것이고, 물이 귀한 가나안에서 제대로 씻기도 힘들었을 것이고, 이 여인이 감내해야 했을 어려움은 어쩌면 우리가 상상하기도 힘들 정도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육체적인 어려움보다 그녀를 더욱 힘들게 했을 것은 아마도 사람들로 하여금 부정하게 여겨져 사실상 세상과 격리됨으로 느껴야 했던 외로움과 절망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혈루증을 앓는 여인들은 사람들과 철저하게 격리되었고, 심지어 그런 병을 가졌던 여인들이 앉았던 자리에 손을 대는 것조차도 부정하게 여겨졌습니다. 이 여인은 자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과 돈을 들였습니다. 병을 고치지 위해 많은 의사에게 찾아갔지만, 치유는커녕 괴로움만 당하였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많은 의사들을 만나보았지만 아무 효험도 없었고 오히려 병은 더 깊어지고 중하여졌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절망적인 순간에, 이 세상 어디에서도 소망을 발견할 수 없던 그 순간에(막5:26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이 여인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그 소문을 듣고 이 여인은 예수님을 따르는 많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그 무리 가운데 끼어들게 됩니다.우리가 세상에서 절망하는 자리가 소망되신 주님을 만나는 자리입니다. 세상에 절망하지 않고는 우리는 주님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절망해서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절망이 우리로 하여금 주님 앞으로 이끄는 소망의 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에 절망해서 이제 주님밖에 없다는, 주님이 아니고서는 이제 저는 죽은 목숨이라는, 주님이 저의 유일한 소망이고 생명이라는 믿음으로 주님을 향해 나아가는 발걸음을 내딛어애 합니다.
이 여인이 무리 중의 한 사람이 된 것은 그냥 재미삼아, 호기심으로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여인이 그 무리 속에 끼어들게 된 것은, 그 군중의 한 사람이 된 이유는 마가복음 5장 28절에 나와 있습니다.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그렇습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자신이 구원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입니다. 세상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소망을 예수님께 발견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 중의 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질병을 고치실 뿐 아니라, 자신을 구원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으로 믿은 것입니다. 절망 중에서 오직 예수님만이 소망되심을 그년느 알았고 믿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따르고 믿는 거대한 그리스도인이라는 무리, 그 군중 속에 속한 한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무리에 속한, 이 군중에 속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있으니 나도 한 번 끼어보자는 생각입니까? 예수님에 대한 호기심 때문입니까? 재미삼아, 할 일이 없어서는 아닙니까? 아니면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소망을 주님 안에서 발견했기 때문입니까? 우리의 인생도 녹녹치 않습니다. 우리의 삶도 혈루증에 걸린 이 연인처럼 각 자 나름대로 힘겨운 고난이나 기막힌 어려움을 겪어보지 않은 분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쩌면 어디에서도 소망을 발견할 수 없는, 절망과 낙심뿐인 상황 속에 처한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12년 동안 혈루증에 걸린 여인처럼 오랜 시간 지치고 힘든 순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더 심각한 상황으로 끌려 들어가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힘을 내십시오. 많은 무리 중에서 수많은 군중 속에서 예수님의 눈에 띄어 인생이 완전 뒤바뀐 여인이 오늘의 말씀에 등장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우리 역시 이 여인처럼 어떻게 주님께 나아갈 수 잇고 그 분의 주목을 받는 존재가 될 수 있을까요?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소망되심을 믿고, 우리의 치료자요, 해결자요, 구원자이신 주님을 바라고 그 분을 따르는 삶으로 나아가길 바랍니다. 그 분을 따르는 그 길에, 그 분을 만나고 그 분을 만지는 그 길에 담대히 나아가는 우리가 되길 원합니다. 그 분이 소망임을 믿고 그 분을 바라보는 삶으로 나아가길 바랍니다.
2) 목숨을 건 믿음으로 예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마가복음 5장 27절은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의 소문을 듣자, 예수님이 소망이심을 믿게 됩니다. 그리고 그 여인이 한 행동은 바로 무리 가운데 끼어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왜냐면 예수님이 그 무리 중에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 무리 중에 끼어들지 않고서는 예수님께 나아갈 수도 없고, 예수님을 만질 수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혈루증이 어떤 병입니까? 부정하게 여겨지는 병이 아닙니까? 모든 사람들로부터 격리되어야 하는 병이 아닙니까? 그렇게 부정하게 여겨지는 여인이 군중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 또한 그것도 모자라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진다는 것은 정말로 목숨을 내놓지 않으면 할 수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만약 그 여인이 혈루증이라는 부정한 병을 앓고 잃는 것이 밝혀지기라도 한다면 그녀는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면 병이 나을 수 있다는 믿음이 이 여인으로 하여금 이런 용기 있는 행동을 하게 한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행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 나아가는 일, 예수님께 기도하는 일, 예수님을 예배하는 일, 예수님께 헌금하는 일, 예수님께 봉사하는 일, 섬기는 일, 그 모든 일들은 실로 믿음이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생명을 거는 믿음 없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인 것입니다.
이 여인은 부정한 사람으로 낙인찍혀 사람들에게 자신의 상황과 형편이 드러나면 죽음의 위기에 직면할 수 있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생명을 걸고, 그 군중 속에 계신 예수님을 향해 한 걸음 한걸음씩 나아갔던 것이다. 한 걸음씩 뗄 때마다, 그 걸음 걸음이 얼마나 두렵고 힘들고 무거웠을까요? 예수님을 향한 이 여인의 나아감은 자신의 명예와 생명을 건 믿음의 발걸음이었고, 예수님께 목숨을 맡긴 믿음의 발걸음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전부를 건 이 여인의 믿음의 발걸음, 예수님의 옷깃을 향한 터치는 결국 진정한 구원자시며, 진정한 치유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과 회복을 자신의 삶에 실제가 되게 하는 근원이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의 구원자, 치료자라고 고백하는 우리의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터치하기 위해 우리는 우리의 생명을 걸고 있습니까? 아닌 생명은 아니더라도 우리의 시간, 우리의 생각, 우리의 소유, 우리의 마음을 드리고 있습니까? 혹시 우리는 예수님을 에워 싼 수많은 무리들처럼 매번 예수님께 나아가지만, 실상 예수님의 구원과 치유의 능력도 경험하지 못하고, 예수님의 은혜를 맛본 적도 없는, 단지 수많은 군중 속에 있는 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매 주마다 교회에 나아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서, 예수님의 능력을 경험하고 싶어서, 또한 그 분이 행하시는 놀라운 표적과 기적을 보기 위해서, 또는 그 분의 은혜와 구원을 누리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시간 예수님을 만나고 경험하기 위해 교회에 나아오지만, 분주한 시간을 쪼개 예수님께 가까이 나아오려 하지만, 실상 우리는 예수님께 그 무엇 하나 내어드리지 않는, 그 무엇 하나 포기하지 않는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기 원합니다. 예수님께 예배드리러 나왔지만, 예수님을 만나지 않아도 아무렇지도 않고, 기도하러 나왔지만 예수님과 교제하는 기쁨을 경험하지 못해도 아무렇지도 않고, 주님이 베푸시는 치유와 구원을 경험하러 나왔지만, 아무것도 누리지 못해도 전혀 이상할 것 없고, 전혀 기대되지 않는 삶을 살아가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기 원합니다. 어쩌면 주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예수님 안에서 진정한 회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소망이나 믿음이 우리 안에 없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기 원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예수님을 만날 수도, 그 분의 은혜와 능력을 경험할 수도 없습니다. 또한 그 믿음은 우리의 생명을 거는, 죽음조차도 뛰어넘는 믿음일 때 더 빛나게 될 것입니다. 나의 삶을, 나의 생명을, 나의 전부를 온전히 주님께 내어 드리고 그 분께 맡기는 믿음이 없이는 우리도 그저 분주함으로 예수님을 따르던, 수많은 군중들 속의 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 군중들 속에서도, 믿음으로 빛났던 한 여인, 예수님의 눈에 띈, 예수님의 주목을 받은 열 두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여인처럼, 유일하게 예수님의 관심을 끄는, 유일하게 예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유일하게 예수님의 구원을 누리는 단 한 사람이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오직 믿음만이 우리를 예수님께 나아가게 하고, 예수님을 만나게 하고, 예수님의 구원을 우리의 삶에서 실제가 되게 하는 능력인 것입니다.
3) 사람들 앞이 아닌, 믿음으로 주님 앞에 서는 믿음의 용기가 필요합니다.
목숨을 걸고 예수님께 나아가 그 분의 옷에 손을 대었던 여인은 곧 자신의 병이 치유되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12년 동안 자신의 삶을 힘들게 했던 모든 병의 근원이 마른 것입니다. 마가복음 5장 29절입니다.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이 여인은 목숨을 걸고 예수님께 믿음으로 나와 병을 고쳤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아니 아무도 몰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자신이 부정한 혈루증에 걸렸다는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부정한 몸으로 군중 속으로 들어와 예수님의 옷을 만졌다는 사실, 그리고 고침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알려지는 것보다 더 두려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 것이 알려지면 그 여인의 목숨도 위태로워질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의 비난과 정죄가 이어질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일어나지 않으면 좋을 것이라고 여겼던 그 일이 벌어집니다. 마가복음 5장 30절부터 32절 말씀입니다. “(5:30)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5:31) 제자들이 여짜오되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하되 (5:32) 예수께서 이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 보시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의 병을 치유하는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를 향해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군중과 무리들 속에 속한 다른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지고 스쳤을 때는 전혀 반응하지 않으셨던 예수님은 그 분의 옷깃을 스친 여인의 만짐에 대해 자신에게서 능력이 나간 줄을 스스로 아시고, 그 여인을 보시려고,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물으시며 주변을 둘러 보셨습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제자들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면서도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수많은 군중이 자신의 몸을 만질 때와는 다른 특별한 터치가 있었다는 것을 아셨고, 결국 예수님의 두리번거리시는 모습에 이 여인은 두려워 떨며, 그 앞에 와서 모든 사실을 그대로 아뢰게 됩니다. 그랬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이 여인의 터치는 특별했습니다. 이 여인의 터치에는 예수님의 치유의 능력을 경험하게 하는 힘이 있었고, 결국 예수님의 구원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능력이 있었던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똑같이 예수님의 옷깃을 스쳤고, 수많은 사람들이 똑같이 예수님의 몸에 손을 대었어도, 결코 그 누구도 쉽게 누릴 수 없었던 치유의 기적을 이 여인은 누릴 수 있었고, 소유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마침내 두려워 떨며, 예수님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털어 놓습니다. 무리와 군중들 앞에서 쏟아놓는 여인의 고백은 결코 믿음의 용기가 없이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사람들 앞이 아닌 예수님의 앞에 서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으로 반응하기보다 사람들의 정죄가 손가락질이 두려워 그냥 침묵할 수도 있었을 텐데, 여인은 자신을 향한 사람들의 비난보다, 어떤 대가를 치루더라도 자신을 찾으시는 예수님의 부름에 순종으로 응답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마가복음 5장 33절입니다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쭈니.”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자신의 모든 일을 사람들 앞에서 그대로 고백하게 되면, 그 사실을 말하게 되면 죽을지도 모르지만 여전히 주님께 순종함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혈루증 치유를 위해 목숨을 건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갔던 여인이, 이제는 동일하게 목숨을 건 믿음의 용기로 자신의 삶에 임한 예수님의 능력과 은혜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 곳에 모인 사랑하는 성도님들, 각각의 삶 가운데 임한 주님의 능력과 은혜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그 분의 능력을 경험하였지만, 그것을 사람들 앞에서 간증하고 선포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와 능력을 선포하려면 우리의 연약함, 우리의 수치, 사람들 앞에서 감추고 싶은 우리의 잘못과 죄악을 드러내야 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이 여인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에게 임한 예수님의 능력을 고백하기 위해 부정했던 자신의 병을 낱낱이 드러내는 용기를 낸 것입니다.
사람 앞이 아닌 주님의 앞에서 주님의 말씀에 믿음의 용기로 순종한 여인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마가복음 5장 34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아마도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 “나의 능력이 너를 치유하였다. 또는 나의 은혜가 너를 구원하였다.” 라고 말씀하실 수도 있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너의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이 여인이 예수님의 몸에 손을 대었어도, 예수님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했던 수많은 군중들과 구별된 이유가 바로 이 여인이 소유한 예수님을 향한 특별한 믿음에 있었음을 분명히 드러내심으로 이 여인을 사람들 앞에서 높여 주고 계십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부정하다고 지탄 받고, 세상과 단절된 채로 살아야 했던 12년동안 혈루증으로 고난을 받았던 여인은 절망 가운데서 오직 소망되신 주님을 바라보고, 목숨을 건 믿음으로 예수님께 나아가고, 또한 믿음의 용기로 주께서 베푸신 은혜와 능력을 선포함으로 예수님께서 주목하시는, 예수님의 눈에 띄는, 예수님의 칭찬과 인정을 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삶의 모든 순간에 이 여인의 모습처럼 주님께 소망을 두고, 주님께 나아가고, 주님의 은혜를 선포함으로 주님의 인정과 칭찬을 받는 주님의 주목을 끄는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지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냥 무리가 아닌, 무리 속에서도 주님께 빛나는 믿음의 한 사람으로 세워지길 간절히 바랍니다.
----------------------------------------------------------------------------------------------------------------------------------------------------------------
마가복음
(5:21) 예수께서 배를 타시고 다시 맞은편으로 건너가시니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이거늘 이에 바닷가에 계시더니 (5:22) 회당장 중의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 아래 엎드리어 (5:23) 간곡히 구하여 이르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하거늘 (5:24) 이에 그와 함께 가실새 큰 무리가 따라가며 에워싸 밀더라 (5:25)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5:26)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5:27)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5:28)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5:29)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5:30)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5:31) 제자들이 여짜오되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하되 (5:32) 예수께서 이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 보시니 (5:33)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쭈니 (5: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