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큰언니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세자매는 모두 같은 초등학교를 다녔다.
그러다가...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을 때...
큰 언니는 초등학교를 졸업하였고,
작은 언니는 우리가 함께 다녔던 학교에 그대로 남겨졌고,
그리고 나는....
당시에 새학교가 개교되는 바람에...
새로 생긴 학교로 배정을 받아..언니들과 함께 다녔던 정든 학교를 떠나야 했다...
그러나 지금도...
저학년 때...언니들과 함께 다녔던 학창시절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를 때가 있다. 그럴때면 내 입가에 작은 미소가 생긴다.
우리 큰언니는 선도부에 있었다.
당시에 선도부원들은 교문에서 지각 학생들을 잡고,
벌을 세우는 일을 했었는데...
나는 학교 교문을 지나칠 때마다 그 곳을 지키고 서 있었던 언니가 자랑스러웠다.
언니를 보면 왠지 모를 듬직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특별히 내가 큰언니를 든든하게 생각했던 이유는...
준비물을 까먹고 학교에 등교하던 일이 많았던 내게 언니의 도움은 과히 상상을 초월하는 구원의 손길이었기 때문이다....
때마다 나는 언니의 도움으로 무사히 여러번의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만....
큰언니는 항상 자상하게 엄마처럼 나를 잘 돌보아 주었다...
나이가 4살차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엄마같았고, 또....친구같았던 큰언니.....
큰언니는 잘하는 일이 참 많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탁구부원으로 활동했던 언니는 탁구도 잘 쳤다.
그래서... 지금도 어렸을 때 쌓아올렸던 그 실력덕분에....
회사나 교회에서 탁구대회가 열리면 언제든지 두둑한 상금을 챙기곤 한다.
그리고 ...
언니는 작가로서의 풍부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언니는 생각이 많았고, 그 생각을 시로 표현하는 일을 좋아했다.
가끔은 자연을 대상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또 하나님을 대상으로 적어내려가는 언니의 시를 보고 있으면....
어린 내 마음속에도 부럽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언니는 어렸을 때부터 집안 꾸미는 일을 좋아했다.
언니가 돈을 벌기 시작했을 때부터..우리집에는 자잘한 장식용 도구들이 집안 곳곳에 걸려지곤 했다.
언니는 집안일을 챙기는데 있어서.. 엄마의 역할을 톡톡히 해 내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가 장사를 하러 나가고 집이 비어지면..
우리 큰언니는 그 비어진 엄마의 공간을 채우기 위해 항상 분주했다.
언니는 엄마를 잘 돌봐줬다.
엄마가 시장에서 장사하는 일을 끝날 때가 되면..
종종 혼자서..그리고 어떨 땐 나를 데리고 엄마에게 가서..
함께 짐을 꾸리고, 리어커를 끌고 집에 오곤 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언니의 역할과 책임은 훨씬 더 무거워졌다.
그리고 언니의 위치는 더 크게 빛을 발했다.
언니는 집안의 대소사 모두를 어깨에 짊어져야 했다.
집안 문제를 해결하는 해결사로, 엄마의 상담자로...
그리고 우리 형제들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버텨주어야만 했다.
물론 언니가 만사에 다재다능한 것은 아니였다...
밥은 잘했지만..
그 밥맛을 더욱 깊게 해주는 반찬솜씨는 영 떨어졌다...
그래서 결혼 후에 형부에게 6개월의 요리 강습과 함께 수 많은 핀잔을 들어야 했지만....
그 언니가...올해 서른 여덟살이다.
남편과 쌍둥이 두자녀를 두고 있는...평범한 여자다..
아니... 사실 나는 우리 큰 언니를 이야기 할 때...
솔직히 평범하다는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
왜냐면 언니는 너무 강한 여자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언니는 너무 많은 이름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하나님의 사랑하는 딸....
한 남자의 아내...
두 아이의 엄마....
시부모님의 며느리....
친정 엄마의 큰 딸....
우리 오빠의 동생..
우리 두 자매의 언니...
여러명의 조카의 고모..
교회에서는 집사...
회사에서는 직장인...
사실
언니는 요즘 너무 지쳐 있다.
여전히....
너무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그녀의 작은 어깨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사흘전..언니가 병원에 갔다 왔다...
신장결석이라는 진단과 함께....
몸에 작은 종양이 있다는 소식이다...
물론 악성종양이 아니길 기대하고 있지만...
어쨌든...집안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언니가 아프다는 소식을 들으니....
내마음 한 구석이 짠~~~해 온다.
어렸을 때 부터....
우리 큰언니는 자신을 돌보겨를이 없었다...
항상 가족들을 챙기고 돌보는 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내야 했다.
그래서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그의 마음에 없었다..
언니는 항상 자신을 맨 나중에 두었다...
다른 많은 가족들이 온통 언니의 마음을 차지하였고,
언니의 도움을 요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언니는...
자신이 아프다는 말도 지극히 아끼는 독한 여자다...
가족들이나...다른 사람이 괜히 마음 고생할지도 모른다고...
일부러...자신의 아픈 병도 숨기는 여자다...
그리고...자신의 병때문에..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갈까봐....
남편에게 병원에 같이 가달라는 말도 차마 못하는...
119 구급차를 불러달라는 미련한 여자다...
자신은 다 괜찮다고...
자신은 잘 견딜 수 있다고..숱한 위로의 말을 쏟아내는 거짓말쟁이다...
정작 다른 사람들의 위로와 사랑과 돌봄이 필요한 존재이면서도...
정작...자신을 보살펴 달라는 요구 한마디 맘껏 소리낼 수 없는 여자다..
그저 자신보다..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기 위해...
자신이 다 소진되어가는 지극히 연약하고 외로운 여자다....
그렇게 착하게 살아온 우리 큰 언니...
그 헌신이 너무 커서..
나는 오늘 이 지면을 통해 언니에게 고맙다고...
정말..언니가 지금까지 잘 견디어 주었다고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졌다.
나는 언니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이젠 언니가...'나를 보살펴 줘! 나에게 사랑과 위로가 필요해"라고 맘껏 소리쳤으면 좋겠다..
진실하게 자신의 외로움과 아픔을 고백했으면 좋겠다..
그래서..모든 사람들이 연약한 우리 큰 언니를 돌볼 수 있는 복된 기회를 나누어 주었으면 좋겠다..
더 이상 자신은 안 아프다고..자신은 괜찮다고....자신은 잘 할 수 있다고...
이를 앙물고....자신의 외로움과 아픔에 더 이상 자신을 버려두는 사람이 아니였으면 좋겠다....
나는 이런 나의 큰 언니가 넘 넘 좋다..
나는 언니를 사랑한다....
그리고 이젠 언니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사람으로..
언니 곁에 든든히 서 주고 싶다..
언니가 나의 곁에 든든히 서 있었던 것처럼....
"언니..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