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모세의 정체성 찾기
우리는 모두 한번쯤 이런 생각을 해보았을 것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이러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은 나 혼자서 규명되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닌 누군가와의 관계를 통해 규정되어집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은 그들의 진정한 창조자이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자신을 알아갈 수 있도록 지음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그리고 그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는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를 통해서만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 속에서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을 찾기 위해 몸부림쳤던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민족으로써 정착되지 못하고 이집트의 속국으로써 노예생활을 하던 시기에 태어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이 하나님이 선택한 민족이라는 사실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현실적으로는 이집트 바로 왕의 지배아래에 속하여 있었던 상태였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은 현실의 세계에서는 감지될 수 없는 하나의 이상에 불과했습니다.
그들은 이집트의 문화와 세계관에 영향을 받는 힘없는 민족으로 스스로를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어디에 속하여 있으며, 어디로부터 왔고 어떠한 목적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지를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단지 이집트에 속해있는 나약한 속국의 불쌍한 민족으로 생각하였고, 그들이 현실의 세계에서 삶이 고달파 힘겨울 때에만 목소리 높여 여호와께 의지하였을 뿐이었습니다.
바로 그때만이 진정으로 자신들이 속한 진정한 나라의 왕국의 왕을 찾아 울부짖은 것이었습니다.
모세는 자신의 정체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던 이스라엘 민족의 흔들리는 정체성의 대표적 인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민족으로 태어났지만, 그의 삶은 완전히 이집트 왕실의 문화와 세계관의 영향력 아래 놓여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다행히도 그의 정확한 정체성에대해 들을 수 있었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유모로 그를 돌보아주던 그의 친어머니로부터 그가 이스라엘의 피를 물려받았고 하나님의 선택받은 자라는 것을 어린 시절부터 그의 귀를 통해 들었을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속삭임으로 알려주던 어머니의 가르침을 통해 희미하게 나마 자신을 이스라엘 민족으로 인식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자신의 정체성(‘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확실한 인식이나 깨달음을 갖지 못하였습니다.
그가 알고 있는 진리와 현실 속에서의 이집트 왕자로써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현실적 자아상과의 괴리감은 너무 컸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정체감에 대한 혼돈 속에서 긴 시간동안 방치되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모세 자신에 대한 자기 정체감의 혼동은 그에게..결국 살인이라는 커다란 죄를 짖도록 유도하게 됩니다.
그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따라... 그가 자신을 이스라엘 민족의 한사람으로써 인식하고, 이스라엘 사람으로써 애굽인을 살해하였을 때, 그는 그 자신이 이스라엘 민족의 한사람으로 받아질 것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는 자신을 히브리인으로 인식하였기에 그가 진정으로 소속된 민족인 히브리인들에게 가치있는 존재로 인정받고 사랑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인으로 받아들여지기 위해 저지른 살인의 죄로인해 그는 이스라엘 민족으로부터 거절당하게 되고...또한, 애굽인으로 부터도 거절당하는 커다란 위기 속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결국 자신에 대한 정체감의 혼동으로 인해 지은 커다란 죄악은 그가 속해있었던 모든 민족으로부터 거절당하는 위험으로 그에게 다가오게 됩니다.
그는 두 민족에서 거절당함을 통해 그들로부터 도망쳐 긴 시간동안 미디안 광야에서 양무리를 치는 자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그 긴 시간동안 그는 여전히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 한 체 살아가게 됩니다.
단지, 그에게 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가 자신의 힘으로 그 무엇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이며, 이 땅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철저한 나그네로서의 자신의 존재를 깨닫게 된다는 것입다.
그가 떨기나무의 불이 붙은 광경을 본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 기적과 같은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긴 시간 모세에게 그 자신이 그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우치시며 가르치시던 그 시간에 확실한 그의 정체감을 가르치시게 하기 위하여 다가오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누구인지를 가르치시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이미 정하신 모세의 사명에 대해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대해 모세는...
자신이 도대체 누구이기에 그 일을 해야하는지에 대해 하나님께 물어보게 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사람들에게 부여되는 기능과 역할은 자신의 정체감에 대한 확실한 기초 없이 올바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모세는 하나님께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자기 정체감에 대한 질문을 하나님께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그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였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대답에 대해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대답으로는 그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명백히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동문서답과 같은 하나님의 대답에는 하나님의 진정한 깊은 뜻이 숨어있음을 우리는 발견해 내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이렇게 대답하고 계신 것입니다.
"너는 오직 나와 함께 있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네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너에게 진정한 정체성을 부여한 창조주이고, 오직 너는 나와의 관계 안에서만 네가 누구인지 깨닫게 되며. 진정한 너의 존재를 알아갈 수 있다."
그는 다시 한번 하나님께 질문한다.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 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
하나님은 모세의 정체성은 오직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찾아지는 것임을 말씀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류의 창조주시고 모든 창조물들은 그 분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비로소 분명해 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너의 정체성은 내 안에서만 찾아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그 누구와의 관계 없이도 나의 정체성을 가질 수 있는 자이다.
왜냐면 모든 인간과 모든 천지만물들은 그들의 진정한 창조자인 나와의 관계를 통해서만 진정한 정체성을 발견할 수 있는 반면...나는 그들에게 정체성을 주는 존재러서 절대적인 기준이다. 나는 그 누구와의 관계없이도, 내 스스로의 정체성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절대자이다."라고...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세상의 창조자이실 뿐만 아니라, 그 분이 절대적인 기준으로써 인간을 포함한 모든 창조물들에게 진정한 정체성을 부여할 수 있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친절하시게도 모세에게 그가 하나님 안에서 어떻게 정체감을 찾고 깨달을 수 있는지를 설명하여 주십니다.
즉,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관계, 그리고 이삭과 야곱과의 관계를 살펴보면서 그들이 가졌던 하나님 안에서의 정체감을 기억하면서 모세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관계를 통해 그들에게 부여하셨던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의 정체감을 모세를 비롯한 모든 자에게 영원히 부여하실 것이다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성경에 분명히 나와 있는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진정한 우리 자신을 찾아가야 하지만 타락된 세상에서 어둠의 영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진리가 아닌 많은 속임들을 진리로 받아들이곤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표현할 때 다른 사람들과 또는 우리가 존귀히 여기는 어떤 대상과의 관계에 기초를 두고 설명합니다.
이러한 원리 때문에 모든 사람들은 상대방 혹은 어떤 특정한 것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찾으려고 합니다.
돈을 좋아하는 사람은 자신이 부자로 불리워지길 원합니다.
명예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들이 있는 위치로 그를 표현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아기를 사랑하는 엄마는 자신을 누구의 엄마로 불려 지길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것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관계요소들로 믿고 있기 때문이며. 그것들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이 진정 의미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믿음때문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가장 중요시하는 것들과 연관지어 자신을 설명하기를 원하며, 그럴때만 자신의 정체성이 의미를 갖게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 사람들은 그것들로 자신을 나타내려고 할까요? 그 사람들은 자신의 속임들 가운데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러한 요소들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유일하게 사랑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 하며, 그리고 유일하게 자신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가치 있는 존재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존재로 만드는 것이.. 바로 자신의 존재를 설명할 때 관계의 기초로 두었던 바로 그 대상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러한 믿음가운데 있기 때문에 진정 자신이 누구이지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들의 존재는 자기 자신이 아닌..그들이 관계 맺기를 꿈꾸고 있는 어떤 대상에 의해 자신의 존재를 인식해 나가는 데 익숙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존재에 매일의 불안과 염려가운데서... 자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치 있게 느끼게 하고 사랑 받게 하는 것들을 빼앗길까 노심초사하게 됩니다.
자신이 관계맺기를 소원하는 그 어떤 대상이 자기에게서 사라질까봐 걱정합니다.
그들은 그들의 돈이 그들의 지위가 그들의 자녀가 그들로 하여금 진정 사랑 받고 있으며 가치 있는 존재로 이 세상을 살아가도록 해주는 가장 중요한 것으로 인식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것들과의 강한 관계를 설명하며 자신을 표현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들에게는 진정한 평안이 없습니다.
그들은 날마다 사랑에 굶주려 있고 자신을 가치 있는 자로 여기지 못하는 자신 안에서의 싸움 때문에 괴로워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세상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 하고,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에 서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잘못된 믿음 체계 안에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우리의 관계의 기초를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의 정체성의 근원은 바로 우리 창조주이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내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서는 이 세상안에 있는 그 무엇과의 관계가 아닌...바로 하나님과의 관계안에서 머물러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진정한 정체성을 부여하실 수 잇는 분이시며, 우리 존재의 진정하며 절대적인 기준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알 수 있는 길...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해답을 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절대자이신 하나님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그 분 안에서 진리를 찾아가는 것 우리는 그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는 더 이상 사랑 받기 위해 몸부림치지 않아도 됩니다.
더 이상 가치 있는 존재로 여김 받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는 딸과 아들로 부르시고 택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죄는 이러한 하나님과의 관계를 엉망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으로만 채울 수 있는 마음이 공허함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그 사랑에 대해 갈급해 하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워지는 그 마음의 갈급함을 사람들은 다른 것으로 채우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게 됩니다.
그것만이 자신의 존재를 가치있게 만드는....그래서 자신이 좀더 의미있고 소중한 존재가 되어질 수 있다는 헛된 속임에 빠져들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 사랑이 박탈되었기 때문에 이것을 얻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게 됩니다. 왜냐하면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고 그 단절은 하나님의 사랑을 그들의 마음이 인식할 수 없도록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거짓들 사이에서 그들은 그들이 알고 있는 방법을 다 동원하여 사랑받고 가치 있는 존재로 서기 위하여 모든 것을 동원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알아두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의 진리가운데 있지 않는다면 우리는 모두 자신이 살아온 것이 옳은 길이었다고 생각하는 자기 기준의 속이는 기준가운데 있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진정한 대답을 모른체로...
그렇게 죽어갈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안에서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정답을 얻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진리안에서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다림줄에 빗데어서 우리가 얼마나 잘못된 삶을 살아 왔는지 깨달아야 합니다.
자신의 기준에 의해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잘못된 벽을 세워가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리안에서 우리 자신을 발견하며..우리의 진정한 정체성을 인식할 때...우리는 우리의 자신의 존귀함을 보게 될 것이며,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가지고 계신 목적과 사명을 온전히 성취할 수 있는 힘과 기반을 얻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이제 절대적 기준이 되신 하나님안에서 당신의 정체성을 찾고, 그 위대하신 하나님과의 관계로... 진정한 정체성의 회복을 위해 나가기 바랍니다.
그러할 때...
모세가 위대한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사명을 완수하였던 것처럼...
우리에게 맡겨진 하나님의 사명을 우리는 성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분과의 진정한 관계...
거기에 우리 존재와 목적의 진정한 출발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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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3:10~15>
이제 나는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나의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게 하겠다."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었다. "제가 무엇이라고, 감히 바로에게 가서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겠습니까 ?"
하나님이 대답하셨다.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네가 이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낸 다음에 너희가 이 산 위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게 될 때에 그것이 바로 내가 너를 보냈다는 징표가 될 것이다."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었다. "제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너희 조상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고 말하면 그들이 저에게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 하고 물을터인데, 제가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합니까 ?"
하나님이 모세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스스로 있는 나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기를 스스로 계신 분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라"
3:15 하나님이 다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기를 여호와,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라.
이것이 영원한 나의 이름이며, 이것이 바로 너희가 대대로 기억할 나의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