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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왕을 따르는 충신들(삼하 15:13-37)

 

제목 : 왕을 따르는 충신들

본문 : 삼하 1513-37

 

(15:13) 전령이 다윗에게 와서 말하되 이스라엘의 인심이 다 압살롬에게로 돌아갔나이다 한지라 (15:14) 다윗이 예루살렘에 함께 있는 그의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일어나 도망하자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 중 한 사람도 압살롬에게서 피하지 못하리라 빨리 가자 두렵건대 그가 우리를 급히 따라와 우리를 해하고 칼날로 성읍을 칠까 하노라 (15:15) 왕의 신하들이 왕께 이르되 우리 주 왕께서 하고자 하시는 대로 우리가 행하리이다 보소서 당신의 종들이니이다 하더라 (15:16) 왕이 나갈 때에 그의 가족을 다 따르게 하고 후궁 열 명을 왕이 남겨 두어 왕궁을 지키게 하니라 (15:17) 왕이 나가매 모든 백성이 다 따라서 벧메르학에 이르러 멈추어 서니 (15:18) 그의 모든 신하들이 그의 곁으로 지나가고 모든 그렛 사람과 모든 블렛 사람과 및 왕을 따라 가드에서 온 모든 가드 사람 육백 명이 왕 앞으로 행진하니라 (15:19) 그 때에 왕이 가드 사람 잇대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도 우리와 함께 가느냐 너는 쫓겨난 나그네이니 돌아가서 왕과 함께 네 곳에 있으라 (15:20) 너는 어제 왔고 나는 정처 없이 가니 오늘 어찌 너를 우리와 함께 떠돌아다니게 하리요 너도 돌아가고 네 동포들도 데려가라 은혜와 진리가 너와 함께 있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15:21) 잇대가 왕께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살아 계심과 내 주 왕의 살아 계심으로 맹세하옵나니 진실로 내 주 왕께서 어느 곳에 계시든지 사나 죽으나 종도 그 곳에 있겠나이다 하니 (15:22) 다윗이 잇대에게 이르되 앞서 건너가라 하매 가드 사람 잇대와 그의 수행자들과 그와 함께 한 아이들이 다 건너가고 (15:23) 온 땅 사람이 큰 소리로 울며 모든 백성이 앞서 건너가매 왕도 기드론 시내를 건너가니 건너간 모든 백성이 광야 길로 향하니라 (15:24) 보라 사독과 그와 함께 한 모든 레위 사람도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어다가 하나님의 궤를 내려놓고 아비아달도 올라와서 모든 백성이 성에서 나오기를 기다리도다 (15:25) 왕이 사독에게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궤를 성읍으로 도로 메어 가라 만일 내가 여호와 앞에서 은혜를 입으면 도로 나를 인도하사 내게 그 궤와 그 계신 데를 보이시리라 (15:26) 그러나 그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기뻐하지 아니한다 하시면 종이 여기 있사오니 선히 여기시는 대로 내게 행하시옵소서 하리라 (15:27) 왕이 또 제사장 사독에게 이르되 네가 선견자가 아니냐 너는 너희의 두 아들 곧 네 아들 아히마아스와 아비아달의 아들 요나단을 데리고 평안히 성읍으로 돌아가라 (15:28) 너희에게서 내게 알리는 소식이 올 때까지 내가 광야 나루터에서 기다리리라 하니라 (15:29) 사독과 아비아달이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도로 메어다 놓고 거기 머물러 있으니라 (15:30) 다윗이 감람 산 길로 올라갈 때에 그의 머리를 그가 가리고 맨발로 울며 가고 그와 함께 가는 모든 백성들도 각각 자기의 머리를 가리고 울며 올라가니라 (15:31)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알리되 압살롬과 함께 모반한 자들 가운데 아히도벨이 있나이다 하니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옵건대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하옵소서 하니라 (15:32) 다윗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마루턱에 이를 때에 아렉 사람 후새가 옷을 찢고 흙을 머리에 덮어쓰고 다윗을 맞으러 온지라 (15:33)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만일 나와 함께 나아가면 내게 누를 끼치리라 (15:34) 그러나 네가 만일 성읍으로 돌아가서 압살롬에게 말하기를 왕이여 내가 왕의 종이니이다 전에는 내가 왕의 아버지의 종이었더니 이제는 내가 왕의 종이니이다 하면 네가 나를 위하여 아히도벨의 모략을 패하게 하리라 (15:35)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이 너와 함께 거기 있지 아니하냐 네가 왕의 궁중에서 무엇을 듣든지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에게 알리라 (15:36) 그들의 두 아들 곧 사독의 아히마아스와 아비아달의 요나단이 그들과 함께 거기 있나니 너희가 듣는 모든 것을 그들 편에 내게 소식을 알릴지니라 하는지라 (15:37) 다윗의 친구 후새가 곧 성읍으로 들어가고 압살롬도 예루살렘으로 들어갔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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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한지경초(歲寒知勁草)”라는 말은 잡초의 생명력은 한 겨울을 지나봐야 안다.”는 의미이고, “질풍지경초(疾風知勁草)”라는 말은 질풍이 몰아칠 때 곧은 풀을 알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의미를 담은 말이 바로 세란지충신(世亂識忠臣)”인데 이는 세상이 어려울 때에 충신을 알 수 있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와 동일한 의미를 담은 난세식충신(亂世識忠臣)” 충신은 난세에 식별 할 수 있다.”는 말이 있지요.

 

          인생이 어려움을 만나고 나서야 얻는 것이 많습니다. 특히 어려움과 고난 속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값진 것이 있다면 그것은 누가 진정으로 나를 자신과 같이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인지, 누가 진짜 나의 친구이고 나의 사람인지, 누가 나의 고난에 끝까지 함께 있어줄 사람인지를 분별하고 깨닫는 일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작년에 남편이 북한산 15m에서 낙상한 일은 어쩌면 제 인생에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남편의 낙상 소식을 전해 듣고, 정신없이 의정부 카톨릭 병원으로 갔습니다. 특히 경추부위 세 군데가 골절되어서, 골절된 부위가 부어오르면 질식의 위험이 있어 중환자실로 향해야만 하는 남편을 뒤로하고, 낙상했을 당시 남편이 가지고 있던 흙에 뒤범벅이 된 등산용 가방을 전해 받고 집으로 터덜터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집으로 걸어오고 있는데, 낮 익은 사람이 저보다 먼저 저희 집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뒷모습이 보였습니다. 손에는 파리바게트 빵집 쇼핑백을 들고 종종 걸음으로 저보다 먼저 저희 집을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그의 모습을 알아채고 사모님~”하고 그 분을 부르자, 그 분은 제게로 와서 덥썩 손을 잡아 주었습니다. 학교에서 같이 공부하고, 또 부부끼리 가끔 함께 모여 사역의 이야기며 삶의 이야기를 나누었던 사모님이었습니다. 우리는 함께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남편의 낙상 소식을 듣고, 남편보다 제가 걱정 되어서 혹 끼니를 굶기라도 할까봐 요깃거리로 빵을 사왔다며 먹고 힘내야 한다고 위로하면서 한참 저와 함께 있어주었습니다. 참 고마웠습니다. 나의 고통을 남의 일로 여기거나 그냥 이야깃거리로 여기지 않고 이렇게 한걸음에 찾아오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나보다 나를 더 걱정하면서 달려와 준 사모님의 위로가 너무 컸습니다. 사모님이 간 후, 흑 먼지 덮 힌 남편의 등산용 가방을 열어 정리하면서,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가방 안에는 찢겨진 토시와 모자, 그리고 산 정상에서 먹고 깨끗이 정리하여 가방에 넣어둔 팥빙수 컵, 물통 등 남편이 겪었을 고통의 자리에 함께 있었던 물품들을 정리하면서 왜 그리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는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남편이 병원에서 보낸 시간들, 특히 의정부 카톨릭 병원에서 보낸 시간은 힘들긴 했지만, 그때그때 마다 예기치 않은 사람들의 온정의 손길이 그리고 간절한 기도의 마음들이 전해졌고, 그 힘으로 저는 거뜬히 그 시간을 지낼 수 있었습니다. “이 사람만큼은 나의 모든 것을 알고 위로해줄 사람이야.”라고 믿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아니라 오히려 이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의외의 사람들이 저희가 겪는 그 고통의 한가운데서 함께 기도해주고 위로해주고 돌봐주고 공급해주었습니다. 저는 그 어려움의 시간을 통해 평소에는 알지 못했던, 비로소 진짜 내가 함께 할 사람들이 누구인지 분명히 보고 알 수 있는 은혜를 얻었습니다. 특히 고통의 한 복판에서 함께 눈물로 기도하고 위로해 주었던 우리 양문 교회 성도님들이야말로 우리가 끝까지 함께 가야할, 함께 곁에 있어주어야 할 분임을 더 절실히 알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제 삶이 그랬듯이, 여러분의 삶도 그러하셨을 것입니다. 이렇듯, 개인의 일이든 국가적인 일이든 난세에 우리는 충신을 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그 때 우리는 분명히 보게 됩니다. 누가 충신이고 누가 간신인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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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세우신 다윗 왕의 삶 가운데서 어쩌면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지금까지도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으로 인정되는 사람입니다. 그의 중심을 아시고 보신 하나님께서 그에게 기름을 부으시고 그를 마침내 이스라엘의 2대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세우시고 하나님이 인정하신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인생은 결코 녹녹하지 않았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가족들에게조차 외면당한 양치기 목동에 불과했고, 백성들의 관심이 다윗에게 집중되자, 그를 죽이려고 추격하는 사울 왕의 모함과 억울한 누명 속에서 도망자의 신세로 살아가기도 했지만, 그 때마다 붙잡아주시고 보호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 속에서, 그는 마침내 이스라엘을 가장 강대한 나라로 세우는 위대한 왕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다윗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통치하셨고, 그 나라를 다스리셨습니다.

 

                      늘 거칠고 힘든 인생을 살아간 다윗이었지만 그래도 그의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참담했을 때가 언제였을까 생각해보면, 아마도 그의 사랑하는 아들 압살롬이 아버지 다윗 왕을 내쫓고 스스로 왕이 되려고 한 순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다윗의 아들이었던 압살롬은 언제나 왕위를 꿈꿔오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여동생 다말을 겁탈한 것을 명분 삼아 그의 이복형 암논을 죽였지만, 어쩌면 그의 속내는 아버지 다윗의 왕위를 물려받을 수 있는 사람들을 먼저 제거함으로써 왕위를 차지하려는 속내에서 기인한 것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암논을 죽인 후, 몇 년이 지나 그는 아버지 다윗으로부터 용서함을 받아 예루살렘에 오게 되는데,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자기가 탈 수레와 말 여러 필을 마련하고 호위병도 쉰 명이나 거느리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아침마다 일찍 성문 길 가에 서서, 소송을 위해 왕의 판결을 받으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듣기 원하는 아첨의 말과 친절한 행동으로 그들을 위로하고 약한 자를 동정합니다. 그러면서 아버지 다윗의 무능함을 비판함으로써 왕의 권위를 실추시키며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도적질합니다. 압살롬이 소유했던 출중한 외모, 높은 명예와 강력해 보이는 권력과 힘 그리고 부드러운 아첨의 말들과 친절한 관심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 사년이란 세월이 흐른 뒤, 그는 스스로 왕이 되는 반역의 자리를 마련합니다. 다윗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하여 자신을 헤브론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하면서 이백 명의 사람들을 초청하여, 그들과 함께 예루살렘에서 헤브론으로 내려가 가게 됩니다. 그리고 다윗의 참모였던 아히도벨을 초청함으로 반역하는 일이 커지자 백성들 역시 압살롬에게 돌아서는 자들이 많아집니다.

 

 

                      압살롬의 반역 소식, 그리고 모든 민심이 압살롬에게 돌아갔다는 전령의 소식은 다윗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을 것입니다. 다윗은 압살롬의 손에 살아남을 자가 없을 것을 알았기에, 모든 신하들에게 명령하여 급히 도망갈 채비를 하게 됩니다. 후궁 열 명만을 남겨 둔 체, 온 가족을 거느리고 예루살렘을 떠나 망명길에 오르게 됩니다. 얼마나 처참했을까요? 도망자의 신세는 이미 사울 왕에 의해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경험했던 다윗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그를 비참한 도망자의 신세로 만든 것은 다름 아닌 그r 낳은 아들 압살롬이었으니 그의 마음이 얼마나 비참하고 처량했을까요? 다윗은 압살롬이 급히 따라와 그들을 해하고 칼날로 성읍을 칠까하는 생각에 두려움에 떨며 피난길에 오릅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감사한 것은 초라한 피난길에도 여전히 다윗을 왕으로 부르며, “우리 주 왕께서 하고자 하시는 대로 우리가 행하리이다 보소서 당신의 종들이니이다.”라고 고백하며 다윗을 따르는 신하들이 함께 했다는 것입니다. 왕이 온 나라를 다스리는 위엄을 갖출 때에든지 아니면 초라한 도망자의 신세로 전락할 때에든지 상관없이 충심으로 그를 따르는 신하들이 곁에 함께 했다는 것은 그에게 큰 위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피난길에 오르면서, 다윗이 먼저 나아가고, 백성들이 그의 뒤를 따라 나섰습니다. 먼 궁 벧메르학에 이르러 멈추어 서자, 다윗의 모든 신하들이 그의 곁으로 지나가고, 그를 따르는 모든 그렛 사람과 모든 블렛 사람과 다윗을 따라 가드에서 온 모든 가드 사람 육백 명이 왕 앞으로 행진을 하게 됩니다.

 

                     1) 그 때, 다윗은 자신을 따라 나선 사람들 중에, 가드 사람 잇대를 보게 되었고, 그에게 이렇게 말을 하게 됩니다. 사무엘하 1519절입니다. “어찌하여 너도 우리와 함께 가느냐 너는 쫓겨난 나그네이니 돌아가서 왕과 함께 네 곳에 있으라 너는 어제 왔고 나는 정처 없이 가니 오늘 어찌 너를 우리와 함께 떠돌아다니게 하리요 너도 돌아가고 네 동포들도 데려가라 은혜와 진리가 너와 함께 있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그러자, 자신을 진심으로 아끼고 배려하는 다윗의 말을 듣던 잇대가 왕에게 대답합니다. 사무엘하 1921절입니다. “잇대가 왕께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살아 계심과 내 주 왕의 살아 계심으로 맹세 하옵나니 진실로 내 주 왕께서 어느 곳에 계시든지 사나 죽으나 종도 그 곳에 있겠나이다.”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다윗은 잇대에게 앞서 건널 것을 명하고, 가드 사람 잇대와 그의 수행자들과 그와 함께 한 아이들이 다 건너가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다윗 왕의 신하들이 모두 그의 앞을 지나갈 때에, 온 땅이 울음바다가 되었고, 다윗 왕이 기드론 시내를 건너 가니 그의 부하도 모두 그의 앞을 지나서 광야 쪽으로 행군하게 됩니다.

 

                      잇대는 어떤 이유에선지 분명치 않으나 블레셋 가드 땅에서 망명해 온 사람이었고, 다윗 왕은 그를 자신의 군대 장관 중 한 명으로 임명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잇대는 헤브론에서 일어난 압살롬의 반란으로 인해 자신이 섬기던 다윗 왕을 따라 피난길에 오르는 처지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이 이야기한 것처럼, 어쩌면 잇대는 초라한 다윗왕의 피난 행렬에 동참할 필요가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고 가족들의 안위를 생각한다면, 오히려 예루살렘 성에 남아 다윗 대신 압살롬을 왕으로 섬기는 것이 그에겐 더 유익할 수 도 있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본토 사람이 아니라, 이스라엘로 망명을 온 외국인이었기 때문에 공연히 이스라엘의 정치적 내란으로 인해 목숨을 빼앗길 염려가 없었고, 굳이 다윗의 피난 행렬을 따라가지 않아도 안전이 보장되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잇대는 기꺼이 자신이 섬기는 다윗 왕을 따라 위험과 고난과 어려움이 예정되어 있는 초라한 피난길을 따라나선 것입니다.

 

                        지금 다윗은 어떤 상황에 있습니까? 다른 사람도 아닌, 그가 낳은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인해 마음이 무너지고 슬픔에 차서, 피난길에 오르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참담한 상황,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에 빠진 곤경 중에서도 그는 자신을 따라 나선 한낱 이방인에 불과한 잇대를 주목하여 보고, 그에게 깊은 배려와 애정을 내보입니다. 어쩌면 다윗 역시, 자신의 피난 대열에 더 많은 사람이 동참하여 주길 원하였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안전을 보장해 주는 용사들이 더 많이 자신을 따라주길 원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 왕은 인간적인 방법보다는, 보이지 않으나 진정한 주권자 되신 하나님을 의지하여,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려는 대담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에, 자신이 곤경에 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잇대의 난감한 처지와 입장을 이해하여 주었고, 그를 배려하였으며, 그에게 최선의 것을 주기 위해 기꺼이 긍휼을 베푸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다면 결코 베풀 수 없는 자비였고 은혜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은혜와 자비하심을 입은 사람이 잇대였고, 다윗은 잇대가 무엇을 선택해도 그에게 기꺼이 허용할 왕이었음을 그 또한 알고 있습니다. 이제 잇대는 다윗 왕을 따르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다윗 왕은 은혜를 베풀었고, 이방에서 망명해 온 잇대 자신의 입장을 왕은 충분히 알고 있었으며, 이해해 주었기에 설령 잇대 자신이 다윗 왕의 피난길에 동행하지 않을지라도 어떤 비난이나 정죄도 들을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쉬운 길을 포기하고, 기꺼이 어렵고 고난이 있는 다윗 왕의 피난길을 고집하게 됩니다. 그는 다윗 왕이 가는 곳이면, 그곳이 어디든지 혹시 자신이 살든지 죽든지, 따라갈 것임을 확실히 살아계신 주님과 다윗의 왕의 존재를 두고 맹세하기까지 이릅니다.

 

                       대부분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화려하고 출중한 외모와 강력한 힘과 능력, 그리고 달콤하고 부드러운 아첨의 말을 쏟아내는 압살롬에게 마음을 빼앗겨 그들의 진정한 왕, 하나님이 세우신 다윗 왕을 버리고, 스스로 왕이 되고자 했던 압살롬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로 망명해 온 한낱 이방인에 불과한 잇대는 도망자의 신분으로 고단하고 초라한 피난길에 오른 다윗 왕을 죽기까지 따르기로 결심합니다. 쉽고 편안해 보이는 길을 버리고, 오히려 그가 섬기던 다윗 왕을 따라 어려움과 고난이 예비 되어 있는 피난길을 걷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의 길은 결코 편안하고 쉬운 길이 아닙니다. 믿음의 길은 오히려 고난과 어려움과 상함이 예비 되어 있는 길입니다. 그래서 좁은 길입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을 구속시키며 산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자신의 전부를 보이지 않으나 실재가 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걸고 나아가야 하는 생명을 건 모험의 길인 것입니다. 보이는 감각적인 것들을 쫓던 대부분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지 못하는 길, 그러나 오직, 보이지 않으나 실재가 되는 하나님의 언약만을 바라보았던 잇대와 같은 믿음의 사람들만이 따를 수 있었던 길, 그 길이 바로 믿음의 길인 것입니다.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깨어짐이 있다는 것을, 곤고함과 피곤함이 있다는 것을, 억울함과 상함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믿음의 사람들은 그들이 섬기는 진정한 왕을 따라 이 길을 선택하며 살아갑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왕의 뒤를 따르는 잇대처럼, 오직 믿음을 가진 몇몇 사람들만이 걷고 있는 고난과 힘겨움과 어려움과 아픔이 예비 되어진 그러나 반드시 영광으로 이어질 이 믿음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어떤 길을 선택하며 걷고 있습니까?

 

이 고난의 초라한 피난길에서 다윗은 잇대와 같이 어떤 고난에도 왕과 함께 하겠다는 충신을 발견하는 은혜를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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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다윗 왕과 함께 온 모든 사람들이 기드론 시내를 건너 광야 길로 향해 행진할 때에 모든 레위 사람과 사독, 그리고 아비아달은 그들이 메고 온 하나님의 언약궤를 내려놓고, 다윗왕의 모든 부하가 도성에서 나아 와서 왕의 앞을 지나갈 때까지 거기에 있으면서 다윗 왕의 파난 대열에 동참하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 다윗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에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기겠다는, 순전한 믿음을 내 보이며 제사장 사독에게 하나님의 언약궤를 다시 도성 안으로 옮기고, 효과적인 전투를 위해 예루살렘 성내의 정보를 전달하는 연락원으로써 책임을 다해줄 것을 부탁하게 됩니다. 그러자 사독은 다윗왕의 명령을 따라 다윗왕의 피난대열에 동참하기를 포기하고 아비아달과 함께 하나님의 언약궤를 다시 예루살렘으로 옮겨 놓고 그 곳에 머물러 있게 됩니다.

                          다윗은 머리를 가리고, 맨발을 한 체, 계속 울면서 감람산 언덕길을 올라 고, 다윗과 함께 있는 백성들도 모두 머리를 가리고 울면서 언덕으로 올라갔습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압살롬과 함께 반역한 사람들 가운데 아히도벨이 끼어 있다는 말을 전해들은 절망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그는 "주님, 부디 아히도벨의 계획이 어리석은 것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라고 간절히 기도하며 걸음을 내딛었습니다. 다윗 왕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마루턱(산꼭대기)에 다다랐을 때 마침, 아렉 사람 후새가 슬픔을 이기지 못하며 자신의 겉옷을 찢고, 머리에 흙을 뒤집어 쓴 채로 나아오면서 다윗을 맞았습니다. 그에게 다윗 왕의 슬픔은 자신의 슬픔이고, 왕의 고통은 자신의 고통이었기 때문입니다그러나 다윗은 후새에게 예루살렘 성으로 돌아가서, 압살롬을 왕으로 섬기는 척 하면서아히도벨의 계획을 실패로 돌아가게 하라는 명을 내렸고, 후새는 다윗의 명을 따라 피난길에 동행하려는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고,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다윗은 고난의 때에 그의 고난에 함께 하려는 여러 충신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에겐 없어서는 안 될 보석같은 사람들이고 진짜 위기에서 자신에게 힘이 되어줄 충신들이었습니다. 다윗을 지지하고 있던 사독과 그와 함께 한 레위인들은 피난길에 오른 다윗과 동행하기 위해 기꺼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예루살렘 메고 나왔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장인 언약궤를 다윗 편에 둠으로써, 앞으로 있을지도 모르는 전쟁에서 다윗에게 유리하게 하고픈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을 위해 행했던 그들의 모든 행동과 생각은 다윗의 명령 앞에서 완전히 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를 가지고, 다윗의 피난 길에 동참하는 것이야말로 다윗을 위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로 여겼었지만, 다윗은 오히려 그들의 의지를 꺾고, 하나님의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다시 옮기고, 거기에 머물면서 예루살렘 성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윗 자신에게 보고하는 연락원으로서 책임을 다하는 것이야 말로, 자신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라 명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의 명령을 들은 사독과 모든 레위인들은 다윗 왕의 명령을 따라 자신들의 생각을 내려놓고 순종합니다. 그리고 다윗이 부여한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 예루살렘 성에 머물게 됩니다. 자신들이 생각한 최선을 포기하고 왕의 명령에 순종함으로써 다윗에게 최선의 것을 바치려는 그들의 충성심이 빛을 발한 결과였습니다.

 

                        후새 역시 사독과 레위인들이 보여 주었던 충성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후새는 자신이 섬기고 따르는 이스라엘의 왕인 다윗이 그의 아들, 압살롬에게 쫓겨 고단한 피난길에 나서게 된 것에 대해, 말로 다 할 수 없는 충격과 슬픔을 갖게 되었고, 초라한 도망자의 신분으로 전락한 다윗 왕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위험한 피난길에 오른 다윗왕을 안전하게 지켜주기 위해, 그의 피난길에 동참하는 것이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후새를 만난 다윗은 후새가 자신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일은, 피난길에 동참하는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 성으로 돌아가서 압살롬을 왕으로 섬기는 척 하면서, 아히도벨의 계획을 실패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라 이야기 했고, 후새는 다윗 왕의 명령을 따라, 자신의 생각을 내세우지 않고, 조금도 주저함 없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사독과 아비아달, 그리고 모든 레위인들과 후새 역시 다윗 왕의 명령에 순종함으로써 그들이 섬기는 왕에게 충성을 다합니다. 자신의 생각과 다를지라도 왕의 명령에 그대로 순종할 뿐입니다. 어쩌면 그들이 행한 순종은 압살롬에 의해 그들의 계획이 드러날 위기에 처해질 수 있는 아주 위험하고 모험적인 것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독과 아비아달 그리고 레위인들과 후새는 자신의 생각이나 의지를 고집하지 않고, 다윗왕의 명령을 순종함으로써 그들이 얼마만큼, 다윗을 사랑하고 신뢰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실로, 그들은 자신들의 생명을 걸고, 반란군이 거주하는 위험한 곳으로 들어갔고, 그곳에서 다윗이 명한대로, 죽을지도 모르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정보를 전달하는 연락원으로써, 또한 아히도벨의 계획을 실패하게 하는 전략원으로서 자신의 임무를 수행해야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들의 순종은 그들이 섬기는 다윗 왕을 위해 목숨을 걸지 않았다면, 결단코 할 수 없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급격하게 악화된 자신의 상황을 바꾸기 위해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습니다. 위험한 시기에 자신을 따라 준 충신들을 이용해 자신의 편의를 도모하고 안위를 도모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안위를 살폈고, 오히려 그들의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보다 앞서지 않도록 그들이 있어야 할 자리를 분명히 지시해주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들이 해야 할 일들이 무엇인지 분명히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확신하며,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 행해지는 모든 일들을 그대로 수용했습니다. 그의 이러한 모습은 자기 스스로를 포기한 절망에서 비롯된 것도, 상황에 대한 무관심에서 비롯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그분의 주권에 내어 맡김에서 비롯되어진 믿음의 행위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 왕을 지지하며, 그를 섬기는 부하들 역시 다윗과 동일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나름대로 다윗을 위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들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기꺼이 행함으로 그것을 나타냈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이 생각했던 것과 판이하게 다른 왕의 명령이 내려질 때 그들은 자신의 생각을 고집하기 위해, 어떤 변명이나 합리화나 구실을 내놓지 않았고, 다윗의 명령을 되돌리기 위해 노력하지도 않았습니다. 단지 다윗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자신들의 생각을 내려놓고, 다윗의 요구가, 얼마나 위험하고 모험적인 것인지도 따져보지 않고, 자신들의 생명을 기꺼이 다윗의 명령에 구속시키며, 즉각적으로 순종하는 충성심을 내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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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을 섬기는 종 된 자들로서, 우리가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깊은 교훈을 주는 말씀입니다. 우리 역시 잇대처럼, 어떠한 상황에서도 왕 되신 하나님과 함께 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기 원합니다. 나의 편의와 나의 유익을 위해 주님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하는 길이 비록 고단하고 힘겹고 어려울지라도 주님과 함께 걷는 충성스러운 자들인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기 원합니다.

                         또한 우리의 왕되시고 주인되신 주님을 충성되이 섬기기 위해 내가 생각한 나름대로 최선의 방안들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에 그저 겸손히 순종하는 자들인지 돌아보기 원합니다. 우리 방식대로 우리가 생각한 충성심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왕되신 주님의 명령에 죽기까지 순종함으로 진정한 충성심을 내보이는 자들인지 돌아보기 원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살펴보면, 우리의 왕되신 주님께 우리가 드릴 수 있는 진정한 최선의 충성은 바로 우리의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에 그대로 순종하는 삶.”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것이 때로는 위험해 보이고, 무모해 보이고, 생명을 걸 만큼 힘들어 보인다 할 찌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야 말로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최선의 충성인 것입니다. 사독과 아비아달 그리고 모든 레위인들과 후새가 그러했던 것처럼 왕의 명령에 겸손히 순종하는 주의 종들이 되길 원합니다.

 

                        다윗은 위급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은혜와 주권을 인정했고, 다윗을 따르던 부하들 역시, 어떠한 위험과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다윗의 명령에 순종함으로써 다윗의 은총과 주권을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자신의 생명과 전부를 걸면서 자신이 섬기는 왕의 명령에 순종할 수 있었던 그들이 섬기는 왕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신뢰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번제와 다른 제사 보다,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시며 그렇기 때문에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생각한 어떤 최선의 것보다,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 이루어낸 그 어떤 것보다하나님은 그분을 신뢰함으로 그분의 말씀에 그대로 믿음으로 순종하는 우리의 모습을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때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생명을 걸어야 할 때가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과 순종으로 반응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충성된 종으로 여기시지 않을까요? 다윗을 충성되게 섬긴 잇대와 사독과 후새처럼, 어떤 위험이 있더라도 주님과 함께 하는 삶,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어떤 고난과 위험이 있든지 우리가 섬기는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의 생명을 걸고 순종하는 주의 충성된 종이 되길 간절히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