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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두려움과 불안이 우리를 삼킬 때, 여로보암의 죄

https://youtu.be/liif_VoyZf8?si=XkM-vG3XzjUitjhT 

 

제목 : 두려움이 우리를 삼킬 때, 여로보암의 죄()

본문 : 왕상 12:25~33 / 왕상 11:26-40

 

 

한 번도 두려움을, 불안을 느껴보지 못한 분이 있을까요? 아마 이 세상 그 누구도 두려움이나 불안을 느끼지 못한 체 살아가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각 자 처한 상황과 직면한 문제 앞에서, 우리는 너무도 자주 두려움과 불안을 느끼고 살아갑니다. 왜냐면 우리는 한 치 앞도 알지 못하는 존재들이고, 우리 자신의 삶 하나 건사할 수 없는 무력하고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포모라는 용어가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포모는 영어 알파벳으로 “FOMO”인데 이는, “Fear of Missing Out”의 줄임말로써 자신만 뒤처지고, 자신만 기회를 놓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외 불안감, 고립에 대한 두려움을 의미합니다. 기회를 놓치는 것에 대한 두려움또는 나만 놓치면 어떻하지? 하는 불안을 나타내는 용어입니다. 쇼핑을 하다보면, “매진 임박”, “한정판매”, “타임세일등의 말을 많이 봤을 것입니다. 이런 용어들을 보면, 사람들은 이 상품을 안 사면 왠지 자신만 손해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되고, 마음이 조급해져서 결국 그 상품을 구매하게 됩니다. 이런 마케팅기법 역시 포모가 그 배경이 됩니다. 특히 요즘에 많은 사람들이 부동산에 투자를 하고, 주식을 투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엄청난 빛을 내서 투자를 합니다. “영끌이라는 단어도 나왔죠. 영혼까지도 끌어 모아 투자를 한다는 말입니다. 나만 빼고, 많은 사람들이 부동산이다 주식이다 투자를 해서 돈을 엄청 벌고 있는데, 나만 투자하지 않고 나만 벼락거지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불안이 그 배경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실 투자하지 않아도 자신의 경제 수준엔 별다른 변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만 기회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두려움, 상대적 빈곤감, 그리고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게 되기 때문에 무리한 투자를 하다가 실패를 경험하곤 합니다. “집값이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데 나빼고 다 돈 벌었네, 주식이 엄청 올랐는데 나 빼고 다 돈을 벌었네.” 하는, 자신의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 돈이 이미 자신의 것이었던 것처럼, 잃어버릴까, 놓칠까 노심초사하고, 돈 벌 수 있는 기회를 자신만 놓치고 잃어버리고 있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FOMO”가 지금 많은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렇게 “FOMO” 증후군에 사로잡혀 기회를 잃어버릴까 두렵고 조급한 마음에 지금이라도 사야한다면서 엄청난 빛을 내서 투자하다가 마침내 길거리에 나앉는 비참한 일들이, 영혼까지 다 팔고 투자하다가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가슴아픈 결국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성도여러분, 지금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습니까? 무엇을 잃어버릴까 불안해하고 있습니까? 다른 사람들은 다 누리고 갖고 있는데, 나만 못 누리고 나만 손해보고 나만 잃어버린 것 같은 나만 뒤처진 것 같은 소외감에 휩싸여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을 함께 살펴보면서 불안과 두려움이 우리를 삼키려할 때,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 말씀을 통해 함께 생각해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여로보암(Jeroboam)은 느밧의 아들로서 에브라임 지파에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솔로몬 왕이 밀로 궁을 건설하고 다윗 성의 갈라진 틈을 보수할 때, 강한 용사일 뿐 아니라 부지런히 일하는 여로보암을 보고 그를 요셉지파의 감독관으로 임명하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히야 선지자가 그에게 와서 그가 입었던 새 옷을 열 두 조각으로 찢더니, 그 중 열 조각을 여로보암에게 주면서 말합니다. “솔로몬이 이방신을 섬기며, 다윗이 행한 것처럼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살지 않았기에,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손에서 이스라엘의 열 지파를 빼앗아 여로보암에게 주어 다스리게 할 것이며, 이스라엘이 남과 북으로 분열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또한 그에게 약속의 말씀을 주십니다. 열왕기상 1137~38절입니다. “내가 너를 취하리니 너는 네 마음에 원하는 대로 다스려 이스라엘 위에 왕이 되되 / 네가 만일 내가 명령한 모든 일에 순종하고 내 길로 행하며 내 눈에 합당한 일을 하며 내 종 다윗이 행함 같이 내 율례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내가 다윗을 위하여 세운 것 같이 너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고 이스라엘을 네게 주리라.” 고 말입니다. 그 후, 이 이야기가 솔로몬 왕에게 알려졌고, 여로보암은 솔로몬 왕이 자신을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애굽 왕 시삭에게 도망쳐 거기서 솔로몬이 죽기까지 기다리게 됩니다. 마침내 솔로몬 왕이 죽고, 여로보암은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오게 됩니다. 하나님을 버린 솔로몬 왕의 죄와 하나님의 통치 원리가 아니라 세상의 원칙대로 백성을 다스리고자 했던 르호보암의 우매한 강압 정치의 결과, 이스라엘은 마침내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이라는 두 나라로 분열되게 됩니다. 아히야 선지자가 여로보암에게 이미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이스라엘 열 지파를 맡기시고, 그를 북이스라엘의 초대왕으로 세우십니다. 그렇게 여로보암을 향한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신실하게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된 여로보암, 그렇다면 그의 삶은 어떠했을까요? 여로보암의 삶을 살펴보면서 우리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길 원합니다.

 

1) 하나님보다 상황이 더 크게 보이고, 하나님 말씀보다 내 생각이 앞설 때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말씀처럼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되었습니다. 남유다를 다스리는 르호보암보다 더 많은 이스라엘 백성을, 그리고 남유다 땅보다 더 비옥하고 풍요로운 북쪽 땅을 다스리게 된 여로보암은 왕이 되자, 세겜을 건축하고 부느엘을 건축하며 나라를 아름답게 단장하고 방비를 견고히 합니다. 얼마나 뿌듯하고 행복한 시간이었겠습니까? 그러나 그러한 시간도 잠시, 그의 마음에는 서서히 불안과 두려움이 엄습하게 됩니다.

 

열왕기상 1226-27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그의 마음에 스스로 이르기를, 나라가 이제 다윗의 집으로 돌아가리로다. 만일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성전에 제사를 드리고자 하여 올라가면, 이 백성의 마음이 유다 왕 된 그들의 주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서 나를 죽이고 유다의 왕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리로다 하고.”

 

그렇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 특히 성인 남자들은 일 년에 세 번(무교절, 칠칠절, 초막절)은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비록 이스라엘이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이라는 두 나라로 나뉘어졌지만, 남유다 백성들이든 북이스라엘 백성들이든 모든 이스라엘 백성은 여전히 하나님 한 분을 섬기고 있었기에,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절기가 되면 성전이 있는 남유다 예루살렘을 향해 가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여로보암의 눈에 그 광경이 너무도 크게 들어온 것입니다. 절기 때 마다 남유다를 향해 내려가는 백성들을 보자, 그는 스스로 마음에 생각하기에 이릅니다. “이렇게 북이스라엘 백성이 자꾸 남유다로 내려가다간 그들의 마음이 바뀌어 나를 죽이고 남유다 르호보암을 왕으로 따르겠구나.”라는 생각에까지 미치게 되고, 그 생각은 그에게 엄청난 두려움과 불안을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해보십시오. 여로보암이 북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는 왕이 될 수 있는 다윗 가문의 사람도 아니었고, 왕족도 아니었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탁월한 능력이 있거나 훌륭한 인품을 지닌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단지 솔로몬 왕의 신하로 요셉지파의 강제 노역 감독관에 불과한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솔로몬이 자신을 죽일까봐 애굽으로 피신하여 숨어 지낼 수밖에 없었던 연약하고 보잘 것 없던 사람이 바로 여로보암이었습니다.

 

그를 왕으로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시며, 이스라엘의 열 지파를 떼어 다스리도록 막강한 권력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는 자신의 신분과 힘으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왕의 자리와 권력을 받아 누리게 된 것입니다. 본래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을 갖게 되고, 본래 자신은 누릴 수 없는 것을 누리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어느 것 하나 자신의 수고나 노력으로 얻은 것도 없고 이룬 것도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그에게 부어주신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가 그를 북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했고, 열 지파를 다스리게 했던 것입니다. 그는 진정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받은 자였습니다. 여로보암은 자신의 삶을 통해 하나님이 얼마나 신실하게 언약을 이루시는 분인지 경험했습니다. 보잘 것 없는 자신을 왕으로 세우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 것인지를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여로보암은 많은 권력과 부귀와 영화와 물질을 소유한 왕이 되자, 그는 하나님도 하나님의 은혜도, 또한 그 분의 말씀도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는 지금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왜 입니까? 무엇 때문입니까? 자신의 삶에 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자,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전능하심을 잊자, 그의 왕위를 견고하게 해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잊자 그는 두려움에 휩싸이게 됩니다. 하나님보다 상황이 더 크게 보이고, 우리에게 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하나님 말씀보다 내 생각이 앞설 때 우리 역시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안타깝게도 여로보암은 그 두려움 앞에서 하나님보다 현실적 상황을, 하나님 말씀보다 자기 지혜와 방법과 자기 생각을 더 의지하는 자가 됩니다. 상황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마침내 그런 상황이 자신을 위협과 죽음에 빠뜨릴 것이라고 믿게 된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하나님이 아닌, 불안한 상황이었고, 귀에 들리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이었습니다. 그에겐 하나님보다 현실적인 상황이 더 크게 보였고,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는 것보다 자기의 생각을 의지하는 것이 더 안전해 보였습니다. 결국 그는 자신의 삶 뿐 아니라 북이스라엘 모든 백성을 결국 파멸으로 인도하는 죄악의 문을 여는 선구자가 됩니다.

 

우리에게도 종종 이와 같을 때가 있지 않습니까? 우리에게도 두려움과 불안이 갑자기 엄습할 때가 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십시오. 언제 우리는 두려워하고 불안해합니까? 아마도 여로보암과 같을 것입니다.

 

우리 역시 여로보암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돌아보면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올 수 있었던 것 모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의 삶에 당연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건강을 지킬 수도, 우리의 생명을 연장할 수도 없습니다. 머리털 하나도 자라게 못하는 것이 우리고, 심장을 뛰게 할 수도 멈추게 할 수도 없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무력하고 연약합니다. 또한 우리가 가진 소유나 재산,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 역시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때로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것을 마치 우리의 수고와 노력으로 얻은 것인 양, 그 어떤 것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놓치지 않으려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우리의 수고와 노력으로 몸부림칠 때가 많습니다. 그것이 무엇이 되든지 말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것이고 또한 그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께서 가장 안전하게 지켜주실 것인데, 우리는 종종 하나님을 잊고, 그 분이 주신 은혜를 잊고, 그분의 약속의 말씀을 잊곤 합니다.

 

어떤 문제를 만나도, 어떤 상황에 부딪혀도, 우리에게 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전능하심을 기억하고, 우리를 안전하게 지키시고 구원하시고 가장 좋은 것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믿는다면, 우리는 모든 두려움과 불안한 상황에서도 넉넉히 견딜힘을 얻고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두려움을 떨쳐내며 불안을 극복하며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감당하기 힘든 문제를 만나고 우리를 낙심시키는 상황에 부딪히며 계속 살아갈 것입니다. 그런데 그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잊고,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그 분의 말씀을 잊어버리는 순간, 우리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살아갈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상황과 문제가 하나님보다 더 커 보이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스스로를 지키고 건져내려고 하다가 마침내 어리석은 죄악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상황이 너무 커보여서, 현실의 문제가 너무 심각해 보여서 보아야 할 하나님을 보지 않고, 들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자기 생각에 사로잡힐 때, 우리는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하나님보다 앞서 나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마치 여로보암처럼 말입니다.

 

잠시 우리의 삶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우리는 어떤 불안과 두려움 앞에 서 있습니까? 무엇을 잃어버릴까봐 두려워하고 계십니까? 무엇을 놓칠까봐 불안해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이렇게 두려움과 불안이 임할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2) 두려움 앞에서,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그 분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소유한 왕이었지만, 여로보암도 두려움의 한가운데 서 있었습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해도, 모든 사람을 다스리는 힘과 권력이 있다 해도 그 역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었고, 바꿀 수 없는 상황이 있었습니다. 왕이었던 여로보암도 그러했는데 하물며 우리는 얼마나 더 하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왕이 되시지 않으면 우리는 스스로가 왕이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잊을 때, 우리는 내 나라를 세웁니다. 하나님이 주신 백성임을 잊을 때 우리는 내 백성을 삼아 그들을 부리게 됩니다. 우리도 매일 매 순간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살아갑니다. 한 치 앞도 알지 못하는 인생이고, 문제를 해결하기엔 능력이나 가지 것이 없고, 그 무엇 하나 감당하기에도 연약하고 부족한 우리는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매일 매 수간마다 우리에게 두려움이 엄습하고 불안이 찾아올 올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그러면 여로보암은 두려움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갔을까요?

 

여로보암을 왕으로 세우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자, 그는 자신의 방법으로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이 주신 왕권을 지키려고 계획했습니다. 그가 생각해낸 자신의 왕권을 지키는 최고의 방법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 드리러 남유다에 있는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는 것을 막는 것이었습니다. 그를 왕으로 세우시고 왕권을 주신 하나님이 이제 여로보암에겐 자신의 왕권을 약화시키는 장애물이었고 장벽이라 여겨진 것입니다. 하나님이 섬김과 경배의 대상이 아닌 이용의 수단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여로보암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열왕기상 1137-38네가 만일 내가 명령한 모든 일에 순종하고 내 길로 행하며 내 눈에 합당한 일을 하며 내 종 다윗이 행함 같이 내 율례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내가 다윗을 위하여 세운 것 같이 너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고 이스라엘을 네게 주리라.”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왕권을 견고히 하기 위한, 모든 것을 가장 안전히 지키기 위한 최고의 방법은 하나님이 명령하신 모든 일에 순종하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길로 행하며, 하나님의 눈에 합당한 일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이 행함 같이 하나님의 율례와 명령을 지키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살아간다면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하신 것처럼, 여로보암을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시고 이스라엘을 주시겠다고 이미 말씀하셨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여로보암은 어떠했습니까? 그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는 일에 실패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보다는 차라리 자기 생각과 방법을 통해 왕권을 지키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바꿀 수 없는 상황으로 말미암아 엄습한 두려움 앞에서, 그는 다시금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기억하고,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을 기억하고 의지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말씀을 의지하기보다는 자기 방법, 자기 지혜, 자기 생각을 따르게 됩니다. 우리 역시 두려움 앞에서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순간을 종종 마주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과 눈에 보이는 상황이라는 현실 중에서 선택해야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믿고 신뢰할 것인가? 아니면 눈에 보이는 현실과 상황을 해결할 자신의 방법을 의지할 것인가? 를 선택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으로 우리의 마음을 채우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생각을 채우지 않으면 우리는 늘 실패하고 넘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한 여로보암은 두려움 앞에서 마침내 엄청난 죄를 짓게 됩니다.

하나님보다 상황이 크게 보이고, 자기 생각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앞서게 되자 그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악한 길로 달려가는 자가 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왕권은 하나님을 믿고 그 분의 약속을 신뢰함으로 가장 견고하게 지킬 수 있는 것인데, 그는 어리석게도 가장 안전하고 쉬운 방법을 버렸습니다. 대신 스스로의 방법으로 자기 왕권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죄악을 서슴치 않고 계획하고 행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그의 마음에 있는 두려움도, 또한 하나님에 대한 죄악 된 일도 모두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그 분의 약속의 말씀을 신뢰하지 못하는 불신앙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열왕기상 1228절부터 33절입니다.

“(12:28)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 하고 (12:29)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 (12:30) 이 일이 죄가 되었으니 이는 백성들이 단까지 가서 그 하나에게 경배함이더라 (12:31) 그가 또 산당들을 짓고 레위 자손 아닌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고 (12:32) 여덟째 달 곧 그 달 열다섯째 날로 절기를 정하여 유다의 절기와 비슷하게 하고 제단에 올라가되 벧엘에서 그와 같이 행하여 그가 만든 송아지에게 제사를 드렸으며 그가 지은 산당의 제사장을 벧엘에서 세웠더라 (12:33) 그가 자기 마음대로 정한 달 곧 여덟째 달 열다섯째 날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절기로 정하고 벧엘에 쌓은 제단에 올라가서 분향하였더라.”

 

그는 자기 왕권을 지키기 위해 남유다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나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길을 차단하고 막아섭니다. 그것도 그들의 입장에서 그들을 위하는 척하면서 말입니다. 하나님께 제사 드리러 굳이 그 먼 길을 갈 필요 없고, 굳이 남유다 예루살렘까지 내려갈 수고를 할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그가 벧엘과 단에 두 금송아지를 만들어 세워놓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고 하면서 거기서 제사를 드리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로보암의 말을 따라 예루살렘보다 더 먼 단까지 가서 금송아지에게 경배하며 제사를 드리게 됩니다. 그리고 두 금송아지 신상을 만들고 거기에 제사를 하는데서 그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산당을 짓고, 레위인이 아닌 사람들로 제사장을 삼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관심조차 없었습니다. 여로보암의 입맛에 맞는 사람이라면 가장 천한 사람일지라도 제사장이 될 수 있었습니다. 여로보암 자신이 제사장을 세우는 일을 서슴치않고 행한 것입니다, 또한 그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715일을 815일로 바꾸어 유다의 절기인 초막절을 정해서 지키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 생각, 자기 뜻, 자기 방법이 기준이 된 것입니다. 왕권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자기 생각을 따라 행한 여로보암으로 말미암아 북이스라엘의 모든 왕들은 여로보암의 죄악된 길을 따라갔고, 북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하찮게 여기고 우상숭배의 길로 나아갔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러한 여로보암의 죄악된 모습은, 무언가를 잃을까봐 두려움과 불안에 사로잡여, 그것을 지키고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몸부림칠 때 우리의 삶의 모습 속에서도 종종 나타나는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잊고 그 분이 주신 은혜를 잊고, 그분의 약속의 말씀을 믿지 못할 때 그래서 우리의 방식과 생각을 따라 살아갈 때 우리의 삶에서 나타나는 어리석은 죄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각각 무언가를 지키고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애쓸 때가 많습니다. 각각의 사람마다 잃어버리지 않고 반드시 지키고 싶은 것은 각각 다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에게 그것은 돈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그것은 자식이 될 수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들에게 받는 인정이 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건강하고 편안한 삶이 될 수도 있고, 또 다른 사람에게는 성공과 명예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가진 재물, , 소유, 자식, 다른 사람들의 인정, 건강, 성공, 명예 등,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들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선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이 주신 것임을 하나님의 은혜임을 잊을 때가 많습니다. 마치 나의 힘과 수고로 얻은 것인 양 착각할 때도 많고, 그것을 잃어버리지 않고 더 많이 소유하고 지키기 위해 애쓸 때도 많습니다. 우리의 기도도 때로는 하나님, 돈을, 자식을, 성공을, 명예를, 건강을 지켜주십시오.”라고 간절히 불짖을 때도 많습니다. 그러다가..그러다가 우리는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이 모든 것을 한 순간에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불안에 휩싸이는 상황을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하다가는 다른 사람들 돈 버는데 나는 돈 다 잃고, 거지가 될 수도 있겠다. 이렇게 하다가는 자녀들이 좋은 성적도 못 받고 실패할 수 있겠다. 이렇게 하다가는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주지 않고 떠나버릴 수도 있겠다.“라고 여길만한 상황들이 우리에게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상황과 현실적인 문제가 하나님보다 더 크게 보이고, 세상 사람들의 소리가, 내안의 생각의 소리들이 하나님의 음성보다 더 크게 들릴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불안과 두려움에 싸이게 됩니다. 그리고 그 두려움 앞에서, 그 불안 앞에서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무엇을 선택해야 합니까?

 

어떤 사람들은 여로보암처럼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믿음의 삶이 아니라 자기 생각, 자기 지혜를 따라 가는 불신과 어리석은 죄악의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이렇게 헌금하다가는 나만 가난해지겠지, 하나님께 이렇게 많은 시간을 드려 예배하면 나만, 내 자식만 성적이 안 나오겠지. 하나님의 말씀만이 옳다고 주장하면 사람들이 나를 배타적인 사람이라며 무시하고 따돌리겠지?“라는 두려움이 우리의 마음에 불현 듯 찾아오면, 우리는 그 때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순간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에 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기억하고 그 분의 말씀을 믿고 순종함으로 우리의 삶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내어 맡김으로 두려움을 이긴 믿음의 삶을 살것인지, 아니면, 내 생각을 따라 세상의 가치를 따라 하나님을 외면하는 어리석은 죄악의 길로 갈 것인지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섬김과 경배의 대상이며 우리의 이용 대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은혜의 하나님이시지, 우리의 것을 빼앗는 장애물이나 장벽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여로보암은 그 두려움 앞에서 무엇을 기억해야 했을까요? 하나님의 은혜로 왕이 된 순간, 낮은 그를 높여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해야만 했을 것입니다. 여로보암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자신의 언약을 반드시 신실하게 이루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성품을 기억해야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게 주신 언약의 말씀을 기억해야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자신의 왕권을 자신의 나라를 자신의 삶을 온전히 의지해야 했을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안전한 길이고 가장 견고하고 강하게 될 수 있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나를 북이스라엘 왕으로 세우신다더니 진실로 하나님이 자신의 언약을 신실하게 이루셨구나. 나에게 이스라엘 지파 중 열 지파를 다스리게 하신다더니 진실로 열 지파를 떼어 나에게 주시고 다스리도록 그 분의 약속이 신실하게 이루어졌구나. 하나님의 율례와 명령을 지키면 하나님이 함께 있어 다윗을 위하여 세우신 것같이 나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고 이스라엘을 내게 주신다고 하셨으니, 이 언약 역시 신실하게 이루어지겠구나.”라고 기억하고 믿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그는 눈에 보이는 상황이 어떠하든지 두려워하거나 불안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는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그리고 북이스라엘을 견고히 세우는 위대한 왕이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 역시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이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하시려고 그 모든 것을 주시고, 순종하면 더 큰 축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때로 현실 앞에서 상황 앞에서 하나님을 잊고, 그 분의 언약도 잊습니다. 그분의 은혜도 잊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을, 내가 스스로 얻은 것인 양 나의 권력, 내 물질, 내 사람들, 내 영광을 스스로의 방식대로 지키기 위해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합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이런 저런 변명을 늘어놓고 합리화하면서, 하나님께 드려야 할 시간과 물질과 마음과 그 모든 것을 가로채어 내 것으로 삼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나님의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가 아니라 내 생각, 내 방법, 내 주장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크게 나를 이끌고 나를 주장하도록 허용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그 결과 북이스라엘의 대부분의 왕들은 여로보암이 걸은 죄의 길로 가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처럼 생각했지만 실상 금송아지를 향해 경배하는 우상숭배의 죄로 나아갑니다.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어떤 상황속에서도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기억하고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을 예배하며 그 분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길 원합니다. 우리 안에 불신에서 비롯되는 모든 불안과 두려움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제거되고 이겨내어지길 원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면 우리는 내 방법을 취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임을 잊으면 우리는 우리의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며 우리는 우리 생각을 앞세웁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가장 복된 길임을 믿지 못하면, 우리는 내 길, 내 방법을 의지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평안이 아니라 두려움이고, 축복이 아니라 저주의 길로 달려가는 발걸음이 됩니다. 지금 우리도 여로보암처럼 하나님과 나, 하나님의 말씀과 내 생각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지 않습니까? 무엇을 선택하든 우리에게 책임이 따를 것입니다. 북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버리고 여로보암의 길을 따라 우상을 섬긴 결과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여로보암의 두려움은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연약한 자신의 존재를 전능하신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무지한 자신의 생각을 전지한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의지했기 때문에 그는 두려움을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모든 것의 공급자 되시는 하나님을 떠날 때,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신뢰하지 못할 때 우리는 불확실하고 불안한 삶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세상의 것을 붙잡게 됩니다. 단과 벧엘에 세워진 금송아지를 숭배하면서도 그들은 스스로 자신을 이집트에서 건져내신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고 착각했습니다. 여로보암과 북이스라엘 백성처럼, 어쩌면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고 말하고 스스로 속이는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하나님이 아닌 우상을 숭배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이 주신 모든 은혜를 내 것인양 내 힘으로 내 방식으로 지키려는 어리석음에 빠져, 하나님을 경배한다고 하면서 돈을, 자녀를, 건강을 숭배하는 스스로의 속임에 빠져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두려움이 많은 존재인지를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두려움의 감정을 허락하시지만 그 목적은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와 상황의 두려움에 압도될 때 우리 자신의 연약함을 보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달려오라는 부르심으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주신 것입니다. 세상 어느 것도 믿을 수 없지만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의지하라고 부르시는 주님의 외침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신 목적입니다. 그 두려움은 우리 스스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오직 주님을 의지해야 가능합니다. 이러한 믿음이 없으면 우리는 두려운 문제를 만나고 상황에 부딪힐 때마다 넘어질 것입니다. 갈등하고 갈팡질팡할 것입니다. 두려우십니까? 우리에게 이 모든 것을 은혜로 주신 분이 누구신지를 기억하십니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약속하셨는지를 기억하십시오. 그 약속을 주신 하나님이 얼마나 신실하시고 전능하신지를 기억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 안에서 우리는 능히 두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두려움이 더 커지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음성보다 상황의 소리가 더 크게 들리십니까? 하나님보다 문제가 상황이 더 크게 보이십니까?

두려움을 해결하려고 어리석게 자신의 방식, 자신의 생각을 따르는 여로보암의 길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길로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기도합니다.

 

성경은 두려워하지 말라고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씀하십니다. 왜냐면 우리가 얼마나 두려움이 많은 연약한 존재인지를 하나님이 아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두려워 하지 말라는 말씀은 365번이나 반복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두려움 속에서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의지하면서 순종의 삶을 살아가시는 그래서 가장 큰 복을 누리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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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11:26~40, 12:25~33

 

(12:25) 여로보암이 에브라임 산지에 세겜을 건축하고 거기서 살며 또 거기서 나가서 부느엘을 건축하고 (12:26) 그의 마음에 스스로 이르기를 나라가 이제 다윗의 집으로 돌아가리로다 (12:27) 만일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성전에 제사를 드리고자 하여 올라가면 이 백성의 마음이 유다 왕 된 그들의 주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서 나를 죽이고 유다의 왕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리로다 하고 (12:28)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 하고 (12:29)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 (12:30) 이 일이 죄가 되었으니 이는 백성들이 단까지 가서 그 하나에게 경배함이더라 (12:31) 그가 또 산당들을 짓고 레위 자손 아닌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고 (12:32) 여덟째 달 곧 그 달 열다섯째 날로 절기를 정하여 유다의 절기와 비슷하게 하고 제단에 올라가되 벧엘에서 그와 같이 행하여 그가 만든 송아지에게 제사를 드렸으며 그가 지은 산당의 제사장을 벧엘에서 세웠더라 (12:33) 그가 자기 마음대로 정한 달 곧 여덟째 달 열다섯째 날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절기로 정하고 벧엘에 쌓은 제단에 올라가서 분향하였더라

 

(11:26) 솔로몬의 신하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또한 손을 들어 왕을 대적하였으니 그는 에브라임 족속인 스레다 사람이요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스루아이니 과부더라 (11:27) 그가 손을 들어 왕을 대적하는 까닭은 이러하니라 솔로몬이 밀로를 건축하고 그의 아버지 다윗의 성읍이 무너진 것을 수축하였는데 (11:28) 이 사람 여로보암은 큰 용사라 솔로몬이 이 청년의 부지런함을 보고 세워 요셉 족속의 일을 감독하게 하였더니 (11:29) 그 즈음에 여로보암이 예루살렘에서 나갈 때에 실로 사람 선지자 아히야가 길에서 그를 만나니 아히야가 새 의복을 입었고 그 두 사람만 들에 있었더라 (11:30) 아히야가 자기가 입은 새 옷을 잡아 열두 조각으로 찢고 (11:31) 여로보암에게 이르되 너는 열 조각을 가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나라를 솔로몬의 손에서 찢어 빼앗아 열 지파를 네게 주고 (11:32) 오직 내 종 다윗을 위하고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한 성읍 예루살렘을 위하여 한 지파를 솔로몬에게 주리니 (11:33) 이는 그들이 나를 버리고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과 모압의 신 그모스와 암몬 자손의 신 밀곰을 경배하며 그의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지 아니하여 내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나 보기에 정직한 일과 내 법도와 내 율례를 행하지 아니함이니라 (11:34) 그러나 내가 택한 내 종 다윗이 내 명령과 내 법도를 지켰으므로 내가 그를 위하여 솔로몬의 생전에는 온 나라를 그의 손에서 빼앗지 아니하고 주관하게 하려니와 (11:35) 내가 그의 아들의 손에서 나라를 빼앗아 그 열 지파를 네게 줄 것이요 (11:36) 그의 아들에게는 내가 한 지파를 주어서 내가 거기에 내 이름을 두고자 하여 택한 성읍 예루살렘에서 내 종 다윗이 항상 내 앞에 등불을 가지고 있게 하리라 (11:37) 내가 너를 취하리니 너는 네 마음에 원하는 대로 다스려 이스라엘 위에 왕이 되되 (11:38) 네가 만일 내가 명령한 모든 일에 순종하고 내 길로 행하며 내 눈에 합당한 일을 하며 내 종 다윗이 행함 같이 내 율례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내가 다윗을 위하여 세운 것 같이 너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고 이스라엘을 네게 주리라 (11:39) 내가 이로 말미암아 다윗의 자손을 괴롭게 할 것이나 영원히 하지는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한지라 (11:40) 이러므로 솔로몬이 여로보암을 죽이려 하매 여로보암이 일어나 애굽으로 도망하여 애굽 왕 시삭에게 이르러 솔로몬이 죽기까지 애굽에 있으니라

 

이사야 41: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