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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기도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순종할 눙력을 입는 통로입니다.(사무엘하 12:15-31)

 

 

다윗은 자신의 죄를 감추기 위해 그의 충신이었던 우리아를 죽이기까지 합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고 회개하지 않던 그에게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보내서 그의 죄를 드러내십니다. 죄를 드러내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숨겨진 죄는 우리를 죽음과 파멸로 이끌어가기에,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드러내심으로써 회개하게하시고 다시 생명의 길로 나아가도록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어제의 말씀에서 보면 하나님은 다윗의 죄가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겼기 때문이고, 하나님을 업신여겼기 때문이라고 일어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지금 다윗은 그가 업신여기던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적받고, 그가 지은 죄로 말미암아 당하게 될 일들이 무엇인지에 대해 듣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아의 아내였던 밧세바와의 간음으로 태어난 아들이 죽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다윗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예고되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밧세바와 다윗 사이에서 낳은 아이를 치셨고 그는 몹시 앓았습니다. 다윗은 그 아이를 살리려고 금식하면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드렸습니다. 왕궁으로 돌아와서도 밤을 새웠으며 맨 땅에 누워 잠을 잤고, 바닥에서 일어나려고 하지도 않았으며, 신하들과 함께 음식을 먹으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이레째 되는 날에 아이가 죽었습니다. 아이가 죽자 신하들은 아이가 죽었다는 것을 왕인 다윗에게 알리기를 두려워했습니다. 아이가 아플 때도 저렇게 슬퍼하셨는데,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면 다윗이 얼마나 낙심할까 하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신하들이 수군거리는 것을 보고서 아이의 죽음을 확인하고는 비로소 땅바닥에서 일어나서 목욕을 하고 몸에 기름을 바르고, 옷을 갈아입은 뒤에 성전으로 들어가서 하나님께 경배하였습니다. 그리고 왕궁으로 돌아온 후, 음식을 차려오게 하여 먹었습니다. 그 후 다윗은 아이를 잃고 슬픔에 빠진 밧세바를 위로하고 그와 동침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 여디디야라 이름 된 아들 솔로몬을 얻게 됩니다. 이 때, 요압은 암몬 사람의 도성 랍바를 쳐서 왕의 도성을 점령하고, 다윗에게 전쟁을 마무리해 달라는 전령을 보냈고, 이에 다윗은 모든 군인을 불러 모으고, 랍바로 가서 그 도성을 쳐서 점령하였습니다. 다윗은 그 도성에서 많은 전리품을 약탈하였으며 그 도성에 사는 백성들을 끌어다가 톱질과 곡괭이질과 도끼질과 벽돌 굽는 일을 시켰습니다. 또한, 그는 암몬 사람의 모든 성읍에 이와 똑같이 한 뒤에 모든 군인을 거느리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의 모습은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모습을 뛰어넘습니다. 아이가 아직 병들어 살았을 때엔, 마치 죽은 것처럼 극도의 슬픔과 애통함을 표현했고, 금식하며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지만, 아이가 죽은 후엔 신하들의 우려와는 정반대로 마치 아이가 살아있는 것처럼, 애통과 간구를 멈추고 하나님께 경배하며, 일상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우리도 힘겨운 상황과 고통에 처할 때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하는 것처럼, 다윗도 고통의 상황에서 하나님께 간절한 기도로 나아갔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그분의 자비와 긍휼을 구하면서 아이의 생명을 살려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간절히 기도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선포된 말씀처럼 아이가 죽었을 때 그는 더 이상 슬픔이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 아이가 죽은 것에 대해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선포하신 말씀대로 이루어진 것을 담담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주권을 전적으로 인정하며 그분을 경배했습니다. 자신의 뜻대로 하나님이 응답하시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 분의 뜻에 자신의 뜻을 굴복시키고 겸허히 순종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문제가 생기면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상황을 바꿔 달라고, 환경을 열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라면 아이가 살았을 때에 낫기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다가 그 아이가 죽으면 상실이 아픔으로 더 큰 슬픔과 애통을 표현하다가, 결국 하나님은 나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으시는구나.” 생각하며 낙심한 체 하나님께 원망과 불평을 쏟아 내거나 심지어 하나님을 떠나거나 멀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오히려 아이의 죽음 앞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취할 수 있는 여느 모습과는 다른 상반된 모습을 취하였던 것입니다. 어떻게 다윗은 이러한 모습을 취할 수 있었을까요? 아마도 그 이유는 다윗이 하나님의 뜻을 자신의 뜻 안에 제한시키지 않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에 순종하는 열려진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아이를 살리려는 다윗의 뜻과 다윗의 죄로 아이가 죽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달랐습니다. 그러나 그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꺾으러하거나 자신의 뜻을 하나님의 뜻보다 앞세우려는 것이 아니었고, 하나님을 조종하려는 악의적인 원함을 담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간절한 기도와 애통을 통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와 긍휼과 용서를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단지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았을 뿐입니다. 혹시 자신이 금식하고 울며 간구하면 하나님께서 자신을 불쌍히 여겨 주셔서 아이의 생명을 살려 주실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은혜와 긍휼의 자리로 나아갔던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뜻을 고집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전적 은혜를 의지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말씀대로 아이가 죽자 다윗은 더 이상 금식하거나 울지 않았고, 아이의 생명을 붙잡고 간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누구보다 간절히 아이가 살기를 원했지만, 자신에게 어떠한 아픔과 고통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뜻을 가장 선한 것으로 불만과 반항 없이 받아들이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고 하나님의 처분을 그대로 수용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다윗의 이러한 모습을 통해 많은 도전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하나님의 뜻보다는 내 뜻을 고집하고 붙잡고 있습니까? 그러고 내 생각대로 기도가 응답되지 않거나 상황이 바뀌지 않거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하나님께 원망과 불만을 쏟아내며 얼마나 큰 낙심과 좌절을 경험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기도는 얼마나 자주 하나님이 은혜를 구하는 도구가 아닌 하나님의 뜻을 내 뜻대로 내 생각대로 바꾸려는 조종의 수단으로 삼고 있습니까?

 

다윗이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며 기도함과는 달리,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기 위한 기도가 아닌 내 자신의 뜻이 이루어지길 위해 얼마나 자주 기도합니까? 다윗은 자신의 뜻이 좌절되고,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된 대로 이루어졌을 때 그대로 하나님의 처분을 수용한 것과는 달리, 우리는 기도했는데도 하나님이 우리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얼마나 자주 그분을 거역하고, 우리의 뜻을 다시 관철시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려고 열심을 냅니까?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경험케 하는 기도가 아니라, 우리의 기도는 내 마음대로 하나님을 조종하고 통제하려는 수단이 되어 버릴 때가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갯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제하실 수 있다면 그렇게 해달라고 땀방울이 피방울이 되도록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셨을 때, 바울이 자신의 육체의 가시를 제거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었을 때, 그리고 다윗이 자신의 아이의 생명을 살게 해달라고 금식하며 간절히 기도했을 때, 그들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은 No였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뜻이 꺾이고 좌절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의 죽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복종시키며 내어주셨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약함을 고쳐주시기 않는 하나님에게 거절당했지만 자신의 약함가운데서 강하게 역사하시는 그리스도의 은혜가 족함을 깨닫고, 오히려 자신의 약함을 자랑했고, 다윗은 간절한 금식과 기도에도 자신의 뜻이 좌절되었으나 신실하신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다시 일상의 삶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기도의 응답은 우리의 뜻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도는 내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뜻을 꺾는 도구나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을 조종하고 통제하는 수단이 아니라 죄인인 우리에게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경험케 하는 도구인 것입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긍휼의 은혜를 입고 다시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또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의 자리, 직분의 자리에서 여전히 충실하고 신실히 살아가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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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12:15-31

 

(12:15) 나단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우리아의 아내가 다윗에게 낳은 아이를 여호와께서 치시매 심히 앓는지라 (12:16) 다윗이 그 아이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되 다윗이 금식하고 안에 들어가서 밤새도록 땅에 엎드렸으니 (12:17) 그 집의 늙은 자들이 그 곁에 서서 다윗을 땅에서 일으키려 하되 왕이 듣지 아니하고 그들과 더불어 먹지도 아니하더라 (12:18) 이레 만에 그 아이가 죽으니라 그러나 다윗의 신하들이 아이가 죽은 것을 왕에게 아뢰기를 두려워하니 이는 그들이 말하기를 아이가 살았을 때에 우리가 그에게 말하여도 왕이 그 말을 듣지 아니하셨나니 어떻게 그 아이가 죽은 것을 그에게 아뢸 수 있으랴 왕이 상심하시리로다 함이라 (12:19) 다윗이 그의 신하들이 서로 수군거리는 것을 보고 그 아이가 죽은 줄을 다윗이 깨닫고 그의 신하들에게 묻되 아이가 죽었느냐 하니 대답하되 죽었나이다 하는지라 (12:20) 다윗이 땅에서 일어나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경배하고 왕궁으로 돌아와 명령하여 음식을 그 앞에 차리게 하고 먹은지라 (12:21) 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는 그를 위하여 금식하고 우시더니 죽은 후에는 일어나서 잡수시니 이 일이 어찌 됨이니이까 하니 (12:22) 이르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 주실는지 누가 알까 생각함이거니와 (12:23) 지금은 죽었으니 내가 어찌 금식하랴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나는 그에게로 가려니와 그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12:24) 다윗이 그의 아내 밧세바를 위로하고 그에게 들어가 그와 동침하였더니 그가 아들을 낳으매 그의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를 사랑하사 (12:25) 선지자 나단을 보내 그의 이름을 여디디야라 하시니 이는 여호와께서 사랑하셨기 때문이더라 (12:26) 요압이 암몬 자손의 랍바를 쳐서 그 왕성을 점령하매 (12:27) 요압이 전령을 다윗에게 보내 이르되 내가 랍바 곧 물들의 성읍을 쳐서 점령하였으니 (12:28) 이제 왕은 그 백성의 남은 군사를 모아 그 성에 맞서 진 치고 이 성읍을 쳐서 점령하소서 내가 이 성읍을 점령하면 이 성읍이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을까 두려워하나이다 하니 (12:29) 다윗이 모든 군사를 모아 랍바로 가서 그 곳을 쳐서 점령하고 (12:30) 그 왕의 머리에서 보석 박힌 왕관을 가져오니 그 중량이 금 한 달란트라 다윗이 자기의 머리에 쓰니라 다윗이 또 그 성읍에서 노략한 물건을 무수히 내오고 (12:31) 그 안에 있는 백성들을 끌어내어 톱질과 써레질과 철도끼질과 벽돌구이를 그들에게 하게 하니라 암몬 자손의 모든 성읍을 이같이 하고 다윗과 모든 백성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