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늘의 묵상

무엇을 보고 듣는가? 죄를 드러낼 때 우리는..(사무엘하 13장 1-22절)

 

 

 

오늘 말씀은 다윗의 아들 암논이 이복 여동생 다말을 욕보이는 엄청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다윗은 옥상에서 목욕하는 여인을 보고, 자신의 힘과 권력을 동원해서 결코 넘봐서는 안 될 충성스러운 부하였던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였고, 그의 아들 암논은 교활한 친구 요나답의 간교한 계략을 듣고 자기 욕망을 만족시키려고 결코 넘봐서는 안 될 정숙하고 사랑스런 이복 누이동생 다말을 욕보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보고 듣느냐는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보고 듣느냐에 따라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도 있고, 반대로 죄의 유혹으로 나아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암논은 그의 죄악 된 욕망을 충동질하는 간사하고 교활한 친구 요나답의 계략을 듣고 곧바로 실행에 옮기게 됩니다. 요나답의 조언에 따라 아버지 다윗을 속이고 그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135절은 요나답의 계략이 기록되어 있고 136절은 암논이 곧 그 일을 행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암논은 요나답의 소리에 귀를 막고 그이 계략을 거부했어야 합니다. 반면 그는 아름다운 이복 누이동생인 다말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죄악의 길에서 돌아서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정 반대로 했습니다.

오늘 말씀 1312~13절은 자신을 욕보이려는 암논을 향해 어리석은 일을 하지 말라고 애원하는 다말의 부르짖음이 기록되어 있고, 14절에는 암논이 그 말을 듣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5~16절에는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억지로 다말과 동침 한 후에 오히려 그녀를 미워하며 내어쫒는 암논에게 그의 죄를 지적하며 옳지 않는 악에 대해 말하며 울부짖는 다말의 말을 듣지 않고 그녀를 내쫓고 문빗장을 지르는 암논의 파렴치한 모습에 대해 그리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암논은 들어야 할 이야기는 듣지 않고, 문빗장을 지르듯 귀를 막아 버렸고, 반대로 듣지 말아야 할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 결과 그는 악한 죄를 저지르는 참혹한 결과를 낳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보아야 할 것을 보고, 보지 말아야 할 것에는 눈을 감아야 합니다. 우리는 들어야 할 것을 듣고. 듣지 말아야 할 것에는 귀를 막아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우리가 죄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죄의 길로 나아가지 않을 수 있는 첫걸음입니다. 무엇을 보고, 듣는데 시간을 보내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음성을 보고 듣는데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까? 그렇게 되길 기도합니다. 그래서 죄를 멀리하는 거룩한 백성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밧세바를 범한 다윗에게 나단 선지자를 보내셔서 그의 죄를 밝히 드러내시고 죄를 직면하게 하셨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자신의 죄를 드러내시는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다윗에게 은총을 베푸셔서 그의 죄를 사하여 주심으로 그의 생명을 보존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암논은 어떠했습니까? 그에게도 하나님은 다윗에게 행하셨던 것처럼 그의 죄를 드러내시고 멈추도록 다말의 입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다말은 조목조목 암논의 죄악을 드러냈습니다. 암논이 행하려 하는 것이 하나님께 얼마나 큰 죄를 짓는 것인지, 이 수치를 지니고 앞으로 살 수도 없다고 항변하며 그의 죄를 밝히 지적하고 드러냈습니다. 그러나 죄를 멈출 기회가 주어지고 죄에서 돌이킬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암논은 멈추지 않았고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의 죄를 지적하고 드러내는 다말을 내어 쫓고 문빗장을 치게 함으로, 죄를 짓고도 그 죄를 덮으려 하고 회피하기에 급급했던 것입니다. 암논에게 다말은 숨기고 싶은 자신의 죄를 직면케 하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암논이 진정으로 보고 싶지 않은 것은 다말 자신이 아니라, 다말을 통해 직면하게 될 자신의 처참한 죄와 그 죄에 대한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을 직면해야 했기 때문에 두려웠을지도 모릅니다. 그는 자신의 죄를 떠오르게 하고 직면하는 다말의 고통과 슬픔 앞에서 정직하고 상한 심령으로 죄를 직면하고 책임감 있게 해결하기보다 다말을 내어 쫓음으로 자기 죄를 부인하고, 자신이 지불해야 할 죄의 대가를 회피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암논은 자신의 정욕을 채우기 위해 죄를 짓는 일에도 급급했고 자신의 죄를 부인하고 죄의 대가인 죽음을 회피하는 데에만 급급했습니다. 그는 죄를 선택했던 자신의 행위에 대해 철저히 책임을 회피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사실 우리의 죄가 지적되고, 우리의 약함이 드러날 때, 우리의 마음은 그것을 쉽게 인정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우리의 죄를 지적하고 드러낼 때 우리의 마음은 기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죄가 드러나고 지적되고 직면될 때, 우리는 그것을 겸허한 심령으로 수용하고, 자신을 돌아보고 애통한 심령으로 회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다윗과 암논의 다른 점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를 직면하는 나단 선지자의 말을 듣고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며 용서를 구했지만, 암논은 자신의 죄를 지적하고 드러내는 다말을 내쫓고 귀를 막고 문 빗장을 지르게 하고 회개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죄에 대해 완고하고 고집스러운 암논의 어리석음을 버리고, 죄를 직면할 때 겸손히 고백하고 회개했던 다윗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믿음이 우리 모두에게 부어지길 기도합니다.

 

오늘의 말씀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우리가 진정 보아야 하고 들어야 할 것을 보고 듣고 있는가? 우리의 마음은 무엇을 향해 열려 있고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가? 또한 하나님이 사람들이나 상황을 통해 우리의 죄를 드러내고 지적하실 때 우리는 과연 어떠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지, 귀를 막고 죄를 숨기고 그 책임을 회피하면서 더 큰 죄악의 길로 나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아니면 겸손히 회개함으로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하심의 은혜를 경험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죄의 결과는 죽음입니다. 죄는 반드시 죽음을 가져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죄를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을 꺼려합니다. 그러나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의 사람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사건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죄를 더 이상 외면하거나 숨기려고 너력하지 않아도 됩니다. 오히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그 죄를 직면할 수 있는 힘을 얻어 회개할 수 있는 담대한 자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와 우리가 감당해야 할 죄의 대가인 죽음을 해결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 안에서 우리는 영원히 죽지 않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해 우리의 죄의 대가인 죽음을 당하심으로써 우리의 죄와 그 결과를 책임지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죄에 대해 솔직히 직면하고 인정하는 힘을 얻은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는 것은 우리에게 큰 힘을 줍니다. 우리는 더 이상 죽기를 무서워하며 일생을 죄의 노예로 살아갈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죄를 짓고 그 죄를 회개하고 인정하는 것은 더 이상 죄의 대가인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죽기를 무서워하여 죄를 감추는데 인생을 허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의 대가인 죽음이 치러졌고, 그리스도의 부활안에서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로 살아가는 것이기에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 없이 우리가 짓는 죄에 대해 정직하게 고백하고 회개함으로써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생명의 은혜를 누리면 되는 것이다. 요한일서 1장 9절에서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죄를 드러내실 때 겸손하게 회개함으로 예수님 안에서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용서의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기도합니다.

 

-----------------------------------------------------------------------------------------------------------------------------------------------------------------

 

사무엘하 13장 1-22절

 

(13:1) 그 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 다윗의 아들 압살롬에게 아름다운 누이가 있으니 이름은 다말이라 다윗의 다른 아들 암논이 그를 사랑하나 (13:2) 그는 처녀이므로 어찌할 수 없는 줄을 알고 암논이 그의 누이 다말 때문에 울화로 말미암아 병이 되니라 (13:3) 암논에게 요나답이라 하는 친구가 있으니 그는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이요 심히 간교한 자라 (13:4) 그가 암논에게 이르되 왕자여 당신은 어찌하여 나날이 이렇게 파리하여 가느냐 내게 말해 주지 아니하겠느냐 하니 암논이 말하되 내가 아우 압살롬의 누이 다말을 사랑함이니라 하니라 (13:5) 요나답이 그에게 이르되 침상에 누워 병든 체하다가 네 아버지가 너를 보러 오거든 너는 그에게 말하기를 원하건대 내 누이 다말이 와서 내게 떡을 먹이되 내가 보는 데에서 떡을 차려 그의 손으로 먹여 주게 하옵소서 하라 하니 (13:6) 암논이 곧 누워 병든 체하다가 왕이 와서 그를 볼 때에 암논이 왕께 아뢰되 원하건대 내 누이 다말이 와서 내가 보는 데에서 과자 두어 개를 만들어 그의 손으로 내게 먹여 주게 하옵소서 하니 (13:7) 다윗이 사람을 그의 집으로 보내 다말에게 이르되 이제 네 오라버니 암논의 집으로 가서 그를 위하여 음식을 차리라 한지라 (13:8) 다말이 그 오라버니 암논의 집에 이르매 그가 누웠더라 다말이 밀가루를 가지고 반죽하여 그가 보는 데서 과자를 만들고 그 과자를 굽고 (13:9) 그 냄비를 가져다가 그 앞에 쏟아 놓아도 암논이 먹기를 거절하고 암논이 이르되 모든 사람을 내게서 나가게 하라 하니 다 그를 떠나 나가니라 (13:10) 암논이 다말에게 이르되 음식물을 가지고 침실로 들어오라 내가 네 손에서 먹으리라 하니 다말이 자기가 만든 과자를 가지고 침실에 들어가 그의 오라버니 암논에게 이르러 (13:11) 그에게 먹이려고 가까이 가지고 갈 때에 암논이 그를 붙잡고 그에게 이르되 나의 누이야 와서 나와 동침하자 하는지라 (13:12) 그가 그에게 대답하되 아니라 내 오라버니여 나를 욕되게 하지 말라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마땅히 행하지 못할 것이니 이 어리석은 일을 행하지 말라 (13:13) 내가 이 수치를 지니고 어디로 가겠느냐 너도 이스라엘에서 어리석은 자 중의 하나가 되리라 이제 청하건대 왕께 말하라 그가 나를 네게 주기를 거절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되 (13:14) 암논이 그 말을 듣지 아니하고 다말보다 힘이 세므로 억지로 그와 동침하니라 (13:15) 그리하고 암논이 그를 심히 미워하니 이제 미워하는 미움이 전에 사랑하던 사랑보다 더한지라 암논이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 가라 하니 (13:16) 다말이 그에게 이르되 옳지 아니하다 나를 쫓아보내는 이 큰 악은 아까 내게 행한 그 악보다 더하다 하되 암논이 그를 듣지 아니하고 (13:17) 그가 부리는 종을 불러 이르되 이 계집을 내게서 이제 내보내고 곧 문빗장을 지르라 하니 (13:18) 암논의 하인이 그를 끌어내고 곧 문빗장을 지르니라 다말이 채색옷을 입었으니 출가하지 아니한 공주는 이런 옷으로 단장하는 법이라 (13:19) 다말이 재를 자기의 머리에 덮어쓰고 그의 채색옷을 찢고 손을 머리 위에 얹고 가서 크게 울부짖으니라 (13:20) 그의 오라버니 압살롬이 그에게 이르되 네 오라버니 암논이 너와 함께 있었느냐 그러나 그는 네 오라버니이니 누이야 지금은 잠잠히 있고 이것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라 하니라 이에 다말이 그의 오라버니 압살롬의 집에 있어 처량하게 지내니라 (13:21) 다윗 왕이 이 모든 일을 듣고 심히 노하니라 (13:22) 압살롬은 암논이 그의 누이 다말을 욕되게 하였으므로 그를 미워하여 암논에 대하여 잘잘못을 압살롬이 말하지 아니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