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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환도뼈가 부러지는 축복(창세기 32:1-32)

제목 : 환도뼈가 부러지는 축복

본문 : 창세기 32:21-32

 

https://youtu.be/wEg2y8X1xnk

 

우리 각자에겐 결코 내 인생에서 이런 일만은 안 일어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일들이 하나씩은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그것은 가족이나 사람과의 관계에 관련된 일일 수도 있고, 자신의 건강과 관련된 일일 수도 있고, 또 경제적인 물질이나 소유와 관련된 일일 수도 있고, 일이나 직장과 관련된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그렇게 안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라고 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측하지 못한 순간에, 또는 예상했던 순간에 그런 일들이 우리 인생에 종종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두려움과 불안과 걱정과 염려에 휩싸이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해 우왕좌왕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 나오는 야곱이 바로 그런 순간에 있었습니다.

 

우리 대부분이 알다시피 야곱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는 경쟁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형 에서의 발꿈치를 잡고 세상에 나올 정도로 장자권을 시시탐탐 노리다가, 사냥하고 돌아와 배고파 죽을 지경에 놓인 에서에게 팥죽 한 그릇을 넘겨줌으로써 마침내 장자권을 손에 넣게 됩니다. 그러나 거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눈이 어두워진 아버지를 속여 에서가 받을 축복까지 가로챘습니다. 물론 이 일은 결국, 에서의 분노와 미움을 사게 되었고 결국 야곱은 살의에 찬 에서를 피해 고향을 떠나게 된 것입니다. 그는 외삼촌 라반이 있는 하란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그곳에 머무는 동안, 야곱은 늘 그래왔듯이 야심차고 경쟁적으로 살아갑니다. 야곱은 그곳에서 사랑하는 라헬을 만났습니다. 14년 동안 그녀를 위해 일해도 세월이 아깝다고 여겨지지도 않을 만큼 뜨겁게 사랑한 여인을 만났고 그녀를 아내로 맞는 축복을 누린 것입니다. 사실 사랑하는 사람을 아내로 맞는 축복을 받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그가 외삼촌 라반을 위해 일하는 동안 그곳에서 라헬 외에도 3명의 아내들을 더 얻었고, 자녀들은 아들 12에 딸 하나를 얻어 엄청난 대가족으로 불어났습니다. 가족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는 품삯을 열 번이나 변경하는 외삼촌 라반의 비열함으로 인해 정당한 품삯을 받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거부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많은 자녀들 그리고 많은 가축들까지 그는 실로 성공한 삶을 산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부족함이 없었으나 그의 마음은 편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외삼촌 라반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하란 땅에서 얻은 많은 가족과 가축의 떼와 종들을 데리고 고향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합니다. 그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그는 자신을 죽이려는 형 에서로부터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고향을 떠나왔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이제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거기서 마주해야 할 사람은 야곱을 향한 미움과 분노로 그를 죽이려 했던 에서였습니다. 야곱에게 있어서 가장 피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바로 자신의 생명을 죽이려했던 에서를 피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반드시 마주해야 하고, 한번은 부딪혀야 할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가장 두려운 사람 에서와의 만남을 통해서 하나님이 야곱의 인생 가운데 행하시고자 한 일은 무엇인지 말씀을 함께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또한 말씀을 함께 살펴보면서 우리의 인생에도 가장 피하고 싶은 일들이 일어나고 우리 앞에 불현 듯 다가올 때, 하나님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 인생에서 무엇을 행하시고자 하시는지 함께 생각해보기를 원합니다.

 

1) 하나님은 두려움 가운에 있는 우리를 아시고 찾아와 만나주시고 돌보시고 보호하십니다.(31:1-2)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은 그리움의 길이고 설레는 기쁨과 기대가 있는 길이었지만 동시에 걱정과 두려움과 불안과 근심의 길이었습니다. 비록 앞을 보지 못하는 아버지 이삭을 속여 에서가 받을 축복을 가로채는 죄를 범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이삭은 자신을 용서하고 받아들여줄 것이고, 어머니 리브가는 평생 자신을 그리워하고 사랑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지금 걷고 있는 길은 사랑하는 부모님의 품이 있는 곳이었고 어렸을 때의 모든 기억과 추억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고향 땅을 떠날 당시, 자신을 죽이려 했던 형 에서의 살기등등한 모습을 잊지 않고 있었기에 고향으로 돌아가는 그 길은 야곱에게 두렵고 답답한 길이 아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야곱은 형 에서의 손에 자신과 아내들과 자녀들의 생명을 빼앗길까 두려웠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잃게 될까봐 두려웠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은 형 에서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고, 그 길은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것처럼 엄청난 두려움을 직면하게 하는 길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두려움과 불안의 길에서 그를 찾아 와 만나 주시는 분이 있었는데 바로 하나님이셨습니다. 야곱에게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하신 분이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야곱이 어떤 두려움에 휩싸일 것인지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그 불안한 상황 가운데로 인도해 가신 것입니다. 창세기 32:1-2야곱이 길을 가는데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지라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두려움에 있는 야곱을 찾아가 만나주셨고 그를 지키시고 돌보고 계심을 눈으로 볼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마나하임은 두 진영이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하나님의 군대라는 의미입니다. 즉 야곱의 가는 길을 후방과 전방에서 지키시고 보호하고 계심을 의미합니다.

우리 역시 우리가 의도하지 않는 두려움의 상황을 마주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예기치 못한 순간에 걸어야만 하는 불안과 염려의 길을 향해 나아가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 때 우리는 야곱이 보았던 것을 보아야 합니다. 야곱을 찾아가 만나주시면서 그를 철저히 보호하고 인도하고 계심을 확인시켜주시던 하나님이 오늘 고통과 두려움을 마주하고 살아가야 하는 우리를 찾아와 만나주시고 우리를 철저히 보호하고 지키시고 계심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힘들고 두려운 상황의 한 가운데서 걸어가고 있다면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군대가 지금 우리를 보호하고 계시다는 것을 말입니다.

 

 

2) 하나님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우리의 연약함을 철저히 보게 하십니다. (32:3-23)

 

야곱은 살고 싶었고, 사랑하는 가족들의 생명을 지키고 싶었고 일평생 일구어 낸 풍요로운 물질과 소유를 지키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에겐 자신의 생명과 가족들의 생명을 지킬만한 힘이 없었습니다. 그에게 있는 것이라고는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불린 많은 가축들과 힘없는 네 명의 아내와 자식들 뿐 이었는데 그들은 모두 야곱이 지키고 돌보아 주어야 할 대상이었습니다. 그에게 있는 것이라고는 자신의 힘과 능력을 의지하며 살아온 얄팍한 지식이 전부였습니다.

 

그는 자신을 죽일지도 모를 에서의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 살길을 궁리했습니다.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먼저 에서의 마음을 달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급 선책 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보다 앞서 종들을 보내며 에서의 은혜를 구하는 당부를 전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게 웬일입니까? 살기 위해 먼저 보냈던 종들이 돌아와 전한 소식은 형 에서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야곱을 향해 오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야곱은 형 에서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오고 있다는 말에 간담이 서늘해졌습니다. 분명히 자신을 죽이려고, 군대를 거느리고 온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야곱은 다시 살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두렵고 답답한 마음으로 자기와 함께 한 자들과 양과 소와 낙타를 두 떼로 나누고, 에서가 와서 한 떼를 치면 남은 한 떼는 피할 수 있도록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의 마음은 진정되지 않았고, 그는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도 했습니다. 창세기 32:9-12절에 기록된 그의 기도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지금까지 은혜를 베푸시고 감당할 수 없는 부요한 축복을 주신 하나님, 내 형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소서. 그가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납니다. 내 자손을 모래와 같이 번성케 하시겠다 약속하셨으니 그 약속을 지키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두려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그 분의 언약을 기억하는 기도였지만, 야곱은 이 상황을 통해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고 자신이 무엇을 다루어야 하는지 하나님께 묻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지 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는 두려움에 기도하고 있지만 주문처럼 자신의 원함을 그저 간절히 부르짖을 뿐이었습니다. 위급한 상황에서 하나님께 기도했지만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니 그의 기도는 그의 바람과 원함대로 응답되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기도가 끝났지만 그의 마음에는 평안이 없었고 상황은 변화되지도 않는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다가 그는 다시 자신의 지혜와 능력을 통해 살 궁리를 모색하게 됩니다. 먼저 형 에서의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엄청난 뇌물을 계획합니다. 암염소 이백, 숫염소 이십, 암양 이백, 숫양 이십, 젖 나는 낙타 삼십과 그 새끼들 그리고 암소 사십, 황소 열, 암나귀 이십과 그 새끼 나귀 열이 그가 에서에게 줄 뇌물의 목록이었습니다. 야곱은 에서를 위해 취한 예물을 각각 떼로 나누어 종들에게 맡기고 각 떼로 거리를 두게 하고, 자기보다 앞서 가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르기를 형 에서를 만나거든 야곱이 뒤에서 따라오고 있음을 전하라.”고 말했습니다. 야곱이 이렇게 한 것은 자기보다 앞서 예물을 형에게 보내 그 예물로 형의 감정을 푼 후에 얼굴을 마주하면 혹시 자신을 용서하고 받아줄지도 모른다는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에서의 마음을 움직이실 거라고 생각하기보다 예물로 그의 마음이 풀릴 것을 기대하고 믿었던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물질의 힘을 의지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물도 앞서 보내고, 종들에게 당부의 말도 잊지 않고 전해 두었지만, 야곱의 두려움과 답답함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여전히 불안했습니다. 다시금 이리저리 살 궁리를 짜내고 시도해보았지만,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한 치 앞도 알지 못하는 무력하고 연약한 인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기도하다가 걱정하다가 심령의 요동을 경험하면서 불안과 두려움으로 밤을 지새우다가 일어나 아내들과 열한 아들들을 인도하여 압복 나루를 건너가게 하고, 자신의 모든 소유도 건너가게 하고, 마침내 홀로 남았습니다.

모든 방법을 동원해 보았지만 사람의 마음 하나 바꿀 수 없는 자신의 연약함을 보았습니다. 어떤 시도를 해보아도 자신의 두려움과 불안 하나 떨쳐버릴 수 없는 연약한 자신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 어떤 것도 그의 생명을 부지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음을 그는 알게 된 것입니다.

 

야곱이 그러했듯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얼마나 무력하고 무지하고 제한된 존재인지를 철저히 깨닫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종종 우리의 삶에 폭풍우를 보내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살기 위해 힘에 지나도록 노를 젓고, 삶에 들이닥친 물을 퍼내느라 진땀을 흘리며 모든 힘과 지혜와 능력을 다 동원해 해결해보려 하지만,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가 바로 우리임을 철저히 깨닫도록 우리를 인도해 가십니다. 우리의 상황하나, 사람의 마음 하나, 우리 안에 있는 두려움과 불안의 한조각도 우리는 바꿀 수 없고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진 모든 수단과 방법의 끈을 놓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실한 기도의 씨름가운데로 들어가게 됩니다.

 

3) 하나님은 기도를 통해 자기 힘을 의지했던 근원을 깨뜨리심으로 하나님 의존적인 복을 누리게 하십니다. (창세기 32:24-32)

인간의 어떤 잔꾀나 얄팍한 방법으로도 해결될 수 없는 문제와 상황 앞에서 비로소 그는 홀로 남았습니다. 형 에서의 손에 죽을지도 모르고, 자신의 모든 소유와 가족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앞에서 그는 홀로 남았습니다. 그는 이제야 비로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존재의 모습으로 홀로 하나님 앞에 선 것입니다. 그리고 벼랑 끝에서 홀로 선 야곱은 하나님과 끈질긴 기도의 줄다리기를 시작하게 됩니다. 이것이 축복입니다.

 

여러분은 어려운 문제를 직면할 때, 두려움과 불안 앞에 설 때, 심지어 죽음의 위기 앞에 설 때 무엇을 하십니까? 기도하십니까? 사실, 문제에 부딪혀 고난 중에 있고, 죽음의 위기 앞에 있다고 해서, 또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여 숨 쉬는 것조차 힘든 상황에 처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다 기도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 상황에서 염려하고 근심하며 불평만 쏟아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기도하는 시늉은 하지만 자기 계획과 방법에 머리를 굴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실상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기도하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라는 것에 대한 믿음, 그리고 이러한 위험과 고통 속에서 구원해 줄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라는 것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만 우리는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전히 자신에게 의지할 힘과 지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기도의 시늉은 할 수 있지만 진실된 기도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하기에 죽음의 위기에 있다손 치더라도 기도할 수 있다면 그것이 우리에게 소망입니다. 사실 기도는 믿음이 있어야 하고 믿음은 우리의 의지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물로 주어지는 것이기에 기도의 자리는 특권이며 은혜입니다. 그래서 무력하고 연약한자로 하나님 앞에 선 사람의 기도는 진정한 복을 누리게 하는 기회의 문이고,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 안으로 들어가는 길입니다.

 

그 길고 지루한 기도의 씨름을 통해 야곱은 마침내 힘의 근원이자 삶의 근간인 자아의 깨어짐과 부서짐을 경험합니다. 그런데 창세기 3224절을 보면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야곱이 자신의 의지로 기도를 시작하고 몸부림친 것이 아닙니다. 야곱은 이제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가난한 심령으로 홀로 남겨져 있었던 것이고, 그런 그에게 찾아와서 기도의 씨름을 시작한 분은 어떤 사람이었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실 기도도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행해 주셔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시작된 기도의 씨름을 야곱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결국 야곱과 씨름하던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쳤고, 야곱의 뼈가 어긋나 그는 절름발이가 됩니다.

 

여기서 허벅지 관절이라고 부르는 부분이 바로 환도뼈이고 이를 넓적다리 뼈라고도 말합니다. 사람의 뼈는 신생아일 때 405개인데 성장하면서 서로 뭉치고 합쳐져서 어른이 되면 206개가 됩니다. 그 모든 뼈 중에서 50cm 안팎으로 가장 길고, 277kg의 압력을 견딜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한 뼈가 바로 이 환도뼈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 뼈는 엉덩이에서 무릎 사이에 있는 뼈로 대퇴부와 상반신을 연결시켜 주고 온 몸을 지탱해 주고 힘의 근간이 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야곱의 이 뼈를 치셔서 절름발이가 되게 하신 것은 매우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을 통해 발꿈치를 잡은 자라는 의미의 야곱, 일평생 자기의 힘을 의지해 살아왔던 야곱의 이름을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라는 의미인 이스라엘로 바꾸어주십니다.

그렇습니다. 속임과 얄팍한 지혜로 세상을 살아 온 야곱은 깨지고 부서지고, 이제 진정한 힘과 생명의 근원되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는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는 절름발이 인생이 된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야곱에게 주시고자 했던 진정한 복입니다. 자기 자신을 의지하는 자가 아닌 하나님을 의지하고 의존하는 자로 변화시키는 것이 하나님이 야곱을 향해 가지신 뜻이었습니다.

깨어진 자아의 비어진 틈에 비로소 하나님의 은혜가 채워진 전혀 새로운 인생인 시작된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 거짓과 속임의 자아가 깨어지고, 하나님의 능력과 힘이 입혀졌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복된 인생입니다. 자신의 생각과 방법만을 의지하며 살아오던 그가 이제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가 된 것입니다. 자기 주도적인 인생에서 변화되어 하나님 중심의 하나님 의존적인 인생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비로소 하나님이 그에게 주시고자 했던 복이었습니다. 야곱은 세상에서 많은 것을 얻고 풍요를 누리고 사는 것을 복이라고 여겼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에게 주시려고 했던 복은 하나님 자신이었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었고, 하나님의 온전한 인도하심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야곱은 홀로 압복강에서 기도의 씨름을 통해 진정한 복이 되신 하나님을 만나고 그 분의 주권을 인정하는 복된 인생이 된 것입니다.

 

어떤 위기에 있던 기도할 수 있다면, 기도할 수 있는 가난한 심령과,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신뢰함으로 엎드릴 수 있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소망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사자에게 자신을 축복하지 않으시면 가게하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우며 씨름을 하였는데, 하나님은 야곱이 원하는 바라는대로 응답하시지 않고 그의 본질을 변화시켜 하나님 자신을 그의 인생의 주인으로 받아들이고 믿도록 그를 깨뜨리셨습니다.

 

때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위기의 상황, 어쩔 수 없는 상황과 환경으로 계속 우리를 몰아가실 때가 있습니다. 숨 막히고 죽을 것 같은 상황으로, 이 방법 저 방법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아무리 시도해 봐도 계속 절망과 실패를 느끼는 문제의 중심으로 우리를 인도해 가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다른 어떤 방법보다 지혜로운 것은 기도로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기도는 환경과 상황 뿐 아니라 우리를 변화시키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친히 일하시도록 그분을 의지하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우리는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 어떤 기도를 합니까? 하나님 약속하셨으니, 상황과 환경을 바꾸시고, 문제를 해결하시고, 변하지 않는 저 사람의 마음을 바꿔달라고 기도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려는 궁극적인 응답이나 복이 아닐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벼랑 끝으로 몰아가셔서 우리가 지금까지 붙들어 왔던 우리의 힘의 근원인 환도 뼈를 부러뜨리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연약함과 무능함을 보게 하시고, 우리의 견고한 자아를 깨뜨리고 부수는 끈질긴 씨름을 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결국 기도의 시간을 통해 우리의 자아를 깨뜨리시고, 하나님 없이는 한 순간도 살 수 없는,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로만 살아가는 새로운 인생의 문을 열어 주십니다. 상황과 환경을 바꾸고,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외치던 우리의 기도가 오히려 그 상황과 환경을 통해 우리 자아를 죽이고 부수고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는 응답이 되어 우리에게 돌아옵니다.

야곱은 에서의 손에 죽을까봐 엄청난 두려움과 불안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갔고, 그 덕분에 기도의 씨름을 과정을 통해 자아를 깨뜨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의존해 사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 두려움의 길을 걷는 내내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은 그와 함께 하셨고 그를 보호하셨고 그를 인도하셨습니다.

 

어떤 상황에 있으십니까? 기도를 통해 문제가 해결되고 상황이 바뀌고 몸의 모든 질병이 치유되고 경제적인 어려움이 풀리고 깨어진 관계가 회복된다면 너무 좋겠지요.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우리가 처한 모든 상황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보게 하시고, 우리가 의지하던 모든 힘을 빼고 온전히 주님을 의지하는 사람이 되도록 만들고 계심을 알아야 합니다. 뒤의 말씀을 계속 읽어보면 에서는 야곱을 죽이려는 생각이 없었습니다. 기도의 시간을 통해 에서의 마음이 변화된 것인지 아니면 아예 처음부터 야곱을 죽일 마음이 없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야곱은 에서와 조우했지만, 오히려 에서는 야곱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며, 그의 생명을 지켜주는 보호자의 역할을 자처하게 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심각한 상황이나 우리를 죽이려는 문제는 어쩌면 우리를 살게 하고, 변화시키고 우리를 지켜주는 은혜의 선물인지도 모릅니다.

 

환도 뼈가 부러지는 벼랑 끝에서 복을 얻은 야곱처럼 어떤 상황과 환경과 고난과 문제 앞에서도 나를 깨뜨리셔서 하나님 없이는 한 걸음도 나갈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에 온전히 의존하는 자로 만드시기 위해 일하시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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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 야곱이 길을 가는데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지라 (32:2)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 (32:3) 야곱이 세일 땅 에돔 들에 있는 형 에서에게로 자기보다 앞서 사자들을 보내며 (32:4)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내 주 에서에게 이같이 말하라 주의 종 야곱이 이같이 말하기를 내가 라반과 함께 거류하며 지금까지 머물러 있었사오며 (32:5) 내게 소와 나귀와 양 떼와 노비가 있으므로 사람을 보내어 내 주께 알리고 내 주께 은혜 받기를 원하나이다 하라 하였더니 (32:6) 사자들이 야곱에게 돌아와 이르되 우리가 주인의 형 에서에게 이른즉 그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주인을 만나려고 오더이다 (32:7)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자기와 함께 한 동행자와 양과 소와 낙타를 두 떼로 나누고 (32:8) 이르되 에서가 와서 한 떼를 치면 남은 한 떼는 피하리라 하고 (32:9) 야곱이 또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내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 (32:10)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실하심을 조금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 (32:11)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함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이 나기 때문이니이다 (32:12)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반드시 네게 은혜를 베풀어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32:13) 야곱이 거기서 밤을 지내고 그 소유 중에서 형 에서를 위하여 예물을 택하니 (32:14) 암염소가 이백이요 숫염소가 이십이요 암양이 이백이요 숫양이 이십이요 (32:15) 젖 나는 낙타 삼십과 그 새끼요 암소가 사십이요 황소가 열이요 암나귀가 이십이요 그 새끼 나귀가 열이라 (32:16) 그것을 각각 떼로 나누어 종들의 손에 맡기고 그의 종에게 이르되 나보다 앞서 건너가서 각 떼로 거리를 두게 하라 하고 (32:17) 그가 또 앞선 자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내 형 에서가 너를 만나 묻기를 네가 누구의 사람이며 어디로 가느냐 네 앞의 것은 누구의 것이냐 하거든 (32:18) 대답하기를 주의 종 야곱의 것이요 자기 주 에서에게로 보내는 예물이오며 야곱도 우리 뒤에 있나이다 하라 하고 (32:19) 그 둘째와 셋째와 각 떼를 따라가는 자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도 에서를 만나거든 곧 이같이 그에게 말하고 (32:20) 또 너희는 말하기를 주의 종 야곱이 우리 뒤에 있다 하라 하니 이는 야곱이 말하기를 내가 내 앞에 보내는 예물로 형의 감정을 푼 후에 대면하면 형이 혹시 나를 받아 주리라 함이었더라 (32:21) 그 예물은 그에 앞서 보내고 그는 무리 가운데서 밤을 지내다가 (32:22) 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널새 (32:23) 그들을 인도하여 시내를 건너가게 하며 그의 소유도 건너가게 하고 (32: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32:25)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32:26)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32:27)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32:28)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32:29) 야곱이 청하여 이르되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32:30)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32:31)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 (32:32) 그 사람이 야곱의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쳤으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까지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먹지 아니하더라